[시조] 정철, 훈민가 1~4
훈민가
훈민가(訓民歌)는 정철이 1580년에 지은 연시조로, 경민가(警民歌), 권민가(勸民歌)라고도 불립니다. 전체 16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철이 45세에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지은 것입니다. 송강가사에 실려 있습니다.
4수씩 4번으로 나눠서 감상하겠습니다.
정철의 연시조, 훈민가
[제1수]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이 아니다면 이 몸이 있겠는가
하늘 같은 은덕을 어떻게 다 갚을고
[제2수]
형아, 아우야 너의 살을 만져 봐라
누구에게 태어났기 모습조차 같은가
같은 젖 먹고 길러졌으니 딴 마음 먹지 마라
[제3수]
임금과 백성 사이 하늘과 땅이로되
나의 서러운 일을 다 알려하시거든
우린들 살찐 미나리 어찌 혼자 먹겠는가
[제4수]
어버이 살아 계실 때 섬길 일 다하여라
지나 간 후 애닮다 한들 어찌하오리
평생에 다시 못할 일 이뿐인가 하노라

훈민가는 그 이름대로 백성을 교화하되, 노래로 읊어서 익히기 쉽도록 하기 위한 것이 특징입니다. 훈민가의 주제는 조선왕조가 들어선 이래 계속 강조되어 온 것입니다. 송순·주세붕에 의해 지어진 바 있는 '훈민시조'가 정철에게로 이어진 것입니다. 정철의 훈민가는 내세우는 덕목은 전과 같으나 정감 있고 순한 말로 전보다 생동감 있게 그려낸 점이 독특합니다.
이 노래는 유교적인 윤리관에 따라 생활할 것을 권했으나, 민요의 사설과 같은 표현방법을 써서 지나치게 의도적이지 않다는 느낌을 줍니다. 여기서 정철의 문학적 기교와 뛰어난 시적재능을 엿볼 수 있습니다.
딱딱한 내용을 노래로 만들어 교화용으로 썼다니 지방관으로 대단히 창의적 발상입니다. 노래가 갖는 널리 불려진다는 장점을 살려 교육에 활용했습니다. 오늘날 노래로 본다면 '독도는 우리 땅', '태정태세 문단세...' 정도 노래라 할까요. 교회 찬송가나 사찰의 찬불가 수준으로 유교 덕목을 시조 운율에 실어 많은 지역민이 읊조리게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