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蔣生不知何許人。己丑年間,往來都下,以乞食爲事。問其名則曰吾亦不知。
問其祖父居住則曰:“父爲密陽座首,生我三嵗而母没。
父惑婢妾之謀,黜我於奴家。十五爲娶民女,數嵗婦死。
因流至湖南西數十州,今抵洛矣。”
其貌甚都秀,眉目如畫。善談笑捧給,尤工謳,發聲淒絶動人。
常被紫綿襖衣,寒暑不易。
凡倚店姬廊,靡不壓人懾笑,遇酒輒自引滿,發唱極其權而去。
或倚酒牛,效盲卜醉巫懶儒嫗者老仍所爲,種種逼眞。
又以面孔學十八羅漢,無不酷似。
又噤口作,笛篳篥瑟琵琶雁鴻等音,難辨眞僞。
夜作雞鳴狗吠,則隣犬雞皆鳴吠焉。
朝則出乞於街市。一日所獲幾三四斗,炊食數升,則散他乞者。
故出則群乞兒兔隨之。明日又如是,人莫測其所爲。
嘗寓樂工李漢家。有一婢髻學胡琴,朝夕與之熟。
一日失縧珠紫絳花鳳尾,莫知所在。
蓋朝自街上來,有俊年少調笑侮辱,因而不見,啼哭不止。
生曰:“咄,小兒何敢乃。願娘無泣,夕當袖來。”
飄然而去。
及夕,招又婢出。逕從西街倚景福西墻,至神虎門角。
以大帶縮婢之腰,纏於左脅,奮迅一躍,飛入數重門。
時曉黑莫辨澗路,倏抵慶會樓。
有二年少奉燭相迎,相視大噱。因自梁上鑿缺中,出金珠羅絹甚多。
婢所失鳳尾亦在焉,年少自還之。
生曰:“二弟慎行止,毋使世人窺吾蹤也。”
遂引還飛出北城,遂還其家。
未明諸李家謝之,則醉臥顚躃。人亦不知夜出也。
壬辰四月初吉。賒酒數斗大醉,攘街以舞,唱歌不輟。
逮明,殞夜倒於水標橋上,人見之,死已久矣。
屍爛爲蠅蛆盡飛去,一夕皆盡,唯衣襪在。
武人洪世熹者居于蓮花,最與之昵。四月從李鎰防倭,行至鳥嶺,見生。
見生踽踽身故握手喜曰:“吾喜非死也。向海東尋一國土去矣。”
因曰:“君今年不合死。有兵禍,向高林勿入水。丁酉年,慎毋南來,或有公幹,勿登山城。”
言畢,如飛而行,須臾失所在。
洪果於琴臺之戰, 憶此言, 奔上山得免。
丁酉七月, 以禁軍在直, 致有旨松樹里相, 都忘其戒。
回至星州, 為賊所追。聞黃石城有備, 疾馳入, 城陷併命。
余少日狎游俠耶。與之諧謔甚親, 窺觀其技。
噫, 其神矣。卽古所謂劍仙者耶。
원문과 해석
蔣生不知何許人。己丑年間,往來都下,以乞食爲事。問其名則曰吾亦不知。
問其祖父居住則曰:“父爲密陽座首,生我三嵗而母没。
父惑婢妾之謀,黜我於奴家。十五爲娶民女,數嵗婦死。
因流至湖南西數十州,今抵洛矣。”
장생(蔣生)이란 사람은 어떠한 내력을 지닌 사람인 줄을 알 수가 없었다. 기축년(己丑年) 무렵에 서울에 왕래하며 걸식하면서 살아갔다. 그의 이름을 물으면 자기 역시 알지 못한다 하였고, 그의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거주했던 곳을 물으면, “아버지는 밀양(密陽)의 좌수(座首)였는데 내가 태어난 후 세 살이 되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께서 비첩(婢妾)의 속임수에 빠져 나를 농장(農莊) 종의 집으로 쫒아냈소. 15세에 종이 상민(常民)의 딸에게 장가들게 해 주어 몇 해를 살다가 아내가 죽자 떠돌아다니며 호남(湖南)과 호서(湖西)의 수십 고을에 이르렀고 이제 서울까지 왔소.” 하였다.
其貌甚都秀,眉目如畫。善談笑捧給,尤工謳,發聲淒絶動人。
常被紫綿襖衣,寒暑不易。
凡倚店姬廊,靡不壓人懾笑,遇酒輒自引滿,發唱極其權而去。
或倚酒牛,效盲卜醉巫懶儒嫗者老仍所爲,種種逼眞。
그의 용모는 매우 우아하고 수려했으며 미목(眉目)도 그린 듯이 고왔다. 담소(談笑)를 잘하여 막힘이 없었고 더욱 노래를 잘 불렀으니 노랫소리가 처절하여 사람들을 감동시키곤 했었다. 기생들 집에도 다니지 않는 곳이 없어 잘 알고 지냈으며, 술만 있으면 곧바로 자기가 떠다가 잔뜩 마시고는 노래를 불러 아주 즐겁게 해 주고는 떠나가 버렸다.
어느 때는 술이 한창 취하면 맹인, 점쟁이, 술 취한 무당, 게으른 선비, 소박맞은 여인, 걸인, 노파들이 하는 짓을 흉내 냈으니, 하는 짓마다 아주 똑같이 해댔었다.
又以面孔學十八羅漢,無不酷似。
又噤口作,笛篳篥瑟琵琶雁鴻等音,難辨眞僞。
夜作雞鳴狗吠,則隣犬雞皆鳴吠焉。
또 가면을 쓰고 열심히 십팔 나한(十八羅漢)을 흉내 내면 꼭 같지 않은 경우가 없었다. 또 입을 찡그려서 피리, 거문고, 비파, 기러기, 고니, 무수리, 집오리, 갈매기, 학 등의 소리를 내는데, 진짜와 가짜임을 구별하기 어렵게 하였다. 밤에 닭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를 내면 이웃 개나 닭이 모두 울고 짖어대는 지경이었다.
朝則出乞于街市。一日所獲幾三四斗,炊食數升,則散他乞者。
故出則群乞兒兔隨之。明日又如是,人莫測其所爲
아침이면 밖으로 나와 거리나 저자에서 구걸을 했으니, 하루 동안에 얻는 것이 거의 서너 말이었다. 몇 되쯤 끓여 먹고 나면 다른 거지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오면 뭇 거지 아이들이 뒤를 따랐다. 다음 날에도 또 그와 같이 해 버리니 사람들은 그가 하는 짓을 헤아릴 수 없었다.
嘗寓樂工李漢家。有一婢髻學胡琴,朝夕與之熟。
一日失縧珠紫絳花鳳尾,莫知所在。
蓋朝自街上來,有俊年少調笑侮辱,因而不見,啼哭不止。
生曰:“咄,小兒何敢乃。願娘無泣,夕當袖來。”
飄然而去。
전에 악공(樂工) 이한(李漢)이라는 사람 집에서 더부살이한 적이 있었다. 머리를 쌍갈래로 땋은 계집이 호금(胡琴)을 배우느라 조석(朝夕)으로 만나게 되어 서로 친숙하였다. 하루는 구슬로 이어진 자줏빛 봉미(鳳尾)를 잃어버리고 있는 곳을 모른다고 하였다. 연유를 들어 보니, 아침에 길 위에서 준수한 소년이 웃으며 농담을 붙이고 몸이 닿고 스치더니 이내 봉미가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애처롭게 울기를 그치지 않더란다. 그래서 장생은, “우습구나. 어린것들이 감히 그런 짓을 하다니. 아가씨야 울지 마라. 저녁이면 반드시 내 소매 속에 넣어 오겠다.” 하고는, 훌쩍 나가 버렸다.
及夕,招又婢出。逕從西街倚景福西墻,至神虎門角。
以大帶縮婢之腰,纏於左脅,奮迅一躍,飛入數重門。
時曉黑莫辨澗路,倏抵慶會樓。
저녁이 되자 계집아이를 불러내어 따라오게 하고서는, 서쪽 거리 곁 경복궁 서쪽 담장을 따라 신호문(神虎門)의 모퉁이에 이르렀다. 계집의 허리를 큰 띠로 묶어 왼쪽 어깨에 들쳐 메고 풀쩍 뛰어, 몇 겹으로 겹친 문으로 날아서 들어갔다. 한창 어두울 때여서 길도 분간할 수 없었지만 급히 경회루(慶會樓) 위로 올라가니 두 소년이 있었다.
有二年少奉燭相迎,相視大噱。因自梁上鑿缺中,出金珠羅絹甚多。
婢所失鳳尾亦在焉,年少自還之。
生曰:“二弟慎行止,毋使世人窺吾蹤也。”
촛불을 들고 마중 나와 서로 보며 껄껄 웃어대었다. 그러더니 상량 위의 뚫어진 구멍에서 금구슬, 비단, 명주가 무척 많이 나왔다. 계집이 잃어버린 봉미 또한 있었다. 소년들이 그것을 돌려주자 장생은, “두 아우는 행동거지를 삼가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의 종적을 보지 못하도록 하게나.” 하였다.
遂引還飛出北城,遂還其家。
未明諸李家謝之,則醉臥顚躃。人亦不知夜出也。
그런 뒤에 끌고 다시 날아서 북쪽 성(城)으로 나와 그의 집으로 돌려보냈다. 계집은 다음 날 밝기 전에 이 씨(李氏)의 집으로 가서 감사의 말을 하려 했더니 술이 취해 누워 코를 쿨쿨 골고 있었고, 사람들 또한 밤에 외출했던 일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壬辰四月初吉。賒酒數斗大醉,攘街以舞,唱歌不輟。
逮明,殞夜倒於水標橋上,人見之,死已久矣。
屍爛爲蠅蛆盡飛去,一夕皆盡,唯衣襪在。
임진년(壬辰年, 선조 25년, 1592년) 4월 초하룻날 값을 뒤에 주기로 하고 술 몇 말[斗]을 사 와, 아주 취해서는 길을 가로막으며 춤을 추고 노래 부르기를 그치지 않았다가 거의 밤이 되어 수표교(水標橋) 위에서 넘어졌다. 다음 날 해 뜬 지 늦어서야 사람들이 그를 발견했는데, 죽은 지가 이미 오래 되었었다. 시체가 부패하여 벌레가 되더니 모두 날개가 돋아 전부 날아가 버려 하룻밤에 다 없어지고 오직 옷과 버선만이 남아 있었다.
武人洪世熹者居于蓮花,最與之昵。四月從李鎰防倭,行至鳥嶺,見生。
見生踽踽身故握手喜曰:“吾喜非死也。向海東尋一國土去矣。”
因曰:“君今年不合死。有兵禍,向高林勿入水。丁酉年,慎毋南來,或有公幹,勿登山城。”
言畢,如飛而行,須臾失所在。
무인(武人) 홍세희(洪世熹)라는 사람은 연화방(蓮花坊)에서 살았으니, 장생과 친하게 지냈었다. 4월에 이일(李鎰)이라는 사람을 따라 왜적을 방어했었다. 조령(鳥嶺)에 이르렀을 때 장생을 만났다. 그는 짚신을 신고 지팡이를 끌면서 손을 붙잡고는 무척 기뻐하면서, “나는 사실 죽지 않았소. 바다 동쪽으로 향하여 한 나라를 찾아 떠나 버렸소.” 하더란다. 그러면서, “그대는 지금 죽을 나이가 아니오. 병화(兵禍)가 있으면 높은 곳의 숲으로 향해 가고, 물에는 들어가지 마시오. 정유년에는 삼가고 남쪽으로는 오지 마시오. 혹 공사(公事)의 주관한 일이 있더라도 산성(山城)으로 오르진 마시오.” 하고는 말을 끝마치자 날아서 가 버리니 잠깐 사이에 있는 곳을 알 수 없더란다.
洪果於琴臺之戰, 憶此言, 奔上山得免。
丁酉七月, 以禁軍在直, 致有旨松樹里相, 都忘其戒。
回至星州, 為賊所追。聞黃石城有備, 疾馳入, 城陷併命
홍세희는 과연 탄금대(彈琴臺) 전투에서 그가 해 준 말을 기억해 내서 산 위로 달아나 죽음을 면할 수 있었다. 정유년(선조 30년, 1597년) 7월에 금군(禁軍)으로 숙직을 할 때, 오리(梧里) 정승에게 임금의 교지(敎旨)를 전해 주느라 그가 경계해 준 것을 모두 잊었었다. 돌아오면서 성주(星州)에 이르러 적군의 추격을 당하자, 황석성(黃石城)이 전쟁 준비가 잘 되어 있다 함을 듣고는 급히 달려갔는데, 성(城)이 함락되자 함께 죽고 말았다.
余少日狎游俠耶。與之諧謔甚親, 窺觀其技。
噫, 其神矣。卽古所謂劍仙者耶。
내가 젊은 시절에 협사(俠士)들과 친하게 지냈고, 그와도 해학(諧謔)을 걸 정도로 아주 친하게 지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잡기놀이를 모두 구경하였다. 슬프다. 그는 신(神)이었거나 아니면 옛날에 말하던 검선(劍仙)과 같은 부류가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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