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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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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 우도(牛島) 고흥 우도(牛島)전라남도 고흥군 남양면에 위치한 우도(牛島)는 득량만 깊숙한 곳에 자리한 작은 섬으로, 면적은 약 0.54㎢이며 해안선 길이는 약 3km에 달합니다. 섬의 모양이 소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우도'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예로부터 '소섬' 또는 '쇠섬'으로 불렸습니다. 특히, 이 섬은 하루에 두 번 바닷길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 현상으로 유명합니다. 간조 시에는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약 1.2km의 노둣길이 드러나며, 이를 통해 주민들과 방문객들이 섬을 오갈 수 있습니다. 우도는 오랜 역사와 독특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고려 말기 황씨 일가가 처음 정착한 이후, 섬의 대나무를 활용하여 임진왜란 당시 화살을 제작해 국가에 공헌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섬은 한때 '우..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카르가 오아시스 카르가 오아시스카르가 오아시스는 이집트 서부 사막에 위치한 가장 큰 오아시스로, 카이로에서 남서쪽으로 약 550k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은 고대부터 나일강과 수단을 연결하는 중요한 무역로였으며, 특히 '남쪽으로 가는 길'이라는 의미의 '다르브 엘-아르바인' 무역로의 핵심 거점 역할을 해왔습니다.이 오아시스에는 다양한 역사적 유적이 남아있습니다. 페르시아 시대에 건설된 히비스 신전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신전으로, 아문신을 모시는 곳이었습니다. 또한 4-6세기에 만들어진 바그아와트 네크로폴리스는 초기 기독교 시대의 중요한 묘지 유적이며, 곳곳에 로마시대의 요새 유적들도 발견됩니다.현재 카르가 오아시스는 약 6만 명의 인구가 거주하는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이곳의 주요 산업은 여전히 농업이며,..
[영화] 노트북 노아와 앨리의 러브스토리'노트북'은 2004년에 개봉한 로맨틱 드라마 영화로, 니콜라스 스파크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두 젊은이, 앨리와 노아의 깊고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노아 칼훈(라이언 고슬링 분)과 앨리 해밀턴(레이첼 맥아담스 분)은 1940년대 남부의 작은 마을에서 만납니다. 노아는 가난한 목재공장 노동자이고, 앨리는 부유한 변호사의 딸입니다. 이들은 서로에게 빠져들지만, 앨리의 부모의 반대와 사회적 차이로 인해 헤어지게 됩니다. 노아는 앨리를 잊지 못하고 전쟁 후에도 그녀를 기다리며, 오래된 집을 수리하며 살아갑니다. 그 농가는 두 연인의 추억이 깃든 집입니다. 한편, 앨리는 다른 남자와 약혼하지만, 노아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버리지 못합니다. ..
포상휴가(褒賞休暇) 포상휴가(褒賞休暇)포상휴가를 받았다. 내가 나에게 주는 포상(褒賞)이다. 4년간 디지털배움터 강사를 지냈으니 포상받을 만하다.생각해 보니 처음 갖는 '포상휴가'다. 군 3년 동안 휴가는 몇 번 나왔지만, '포상휴가'는 없었다. 비행기 탑승도 몇 번 없었으니, 이번 기회에 '에어 체험학습'을 톡톡하게 했다. 당일 돌아오는 코스를 택한 것은 방송대 시험 압박도 있었다. 이번 체험에서 국내선 탑승도 이리 어려운 줄 안 게, 큰 수확이다. 다행히 날이 좋다. 제주 공항에서 자전거 대여점까지 걸어가는 데 펼쳐진 하늘은 날 반기는 것 같은 쪽빛이다.대여소는 먼 거리는 아니다. 자전거 대여 수속을 대충 밟고 페달을 밟는다. 자전거는 내게 친구이자 약이다. 해변으로 내닫는 내 눈에 낯선 풍경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용두..
[답사] 임제, 물곡(勿哭) 백호 임제(林悌)백호 선생(1549~1587)은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자유분방해 스승이 없었습니다. 1570년(선조 3) 22세 되던 겨울날 충청도를 거쳐 서울로 가는 길에 쓴 시가 성운에게 전해진 것이 계기가 되어 성운을 스승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젊어서는 얽매임을 싫어하여 기녀와 술자리를 즐기며 살았습니다. 1571년(선조 4) 23세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이때에 잠시 술을 끊고 글공부에 뜻을 두었습니다. 28세에 속리산에서 성운을 하직하고, 생원·진사에 합격했습니다. 이듬해에 알성시에 급제한 뒤 흥양현감(興陽縣監)·서북도 병마평사(西北道兵馬評事)·관서 도사(關西都事)·예조정랑(禮曹正郞)을 거쳐 홍문관지제교(弘文館知製敎)를 지냈습니다. 그러나 성격이 호방하고 얽매임을 싫어해 벼슬길에 대한 마음이 차차 없..
[답사] 나주 금안리의 서원들 나주 노안면 금안리는 명촌으로 호남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마을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 마을과 주변에는 세 서원이 있다. 사암 박순을 모신 '월정서원', 설재 정가신을 모신 '설재서원' 그리고 환훤당 김굉필을 모신 '경현서원'이 모두 십리 이내에 있다. 월정서원(月井書院)월정서원은 경현서원과 함께 16~17세기 나주지역 사족들의 활동양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1659년(효종 10) 나주출신으로 영의정을 지낸 사암 박순(思菴 朴淳)의 학덕을 흠모하던 도내 유림들에 의해 서원건립이 발의되었고 홍탁이 상소를 올려 1664년(현종 5)에 금성산 월정봉 아래에 창건되었다. 1669년(현종 10) 사액이 내려졌다. 서원은 많이 묵어 있었다.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하고 담 너머로 볼 수 있는..
[답사] 기억을 믿을 수 없다, 나주 금안리 믿을 수 없는 기억나주로 접으면서 '답전보'의 주인공 려말선초 인물 조선 개국 공신 삼봉 정도전 흔적을 찾기로 했다. 바로 백룡산 기슭의 누구도 찾기 힘든 곳에 있는 '정도전 유배지', 내게는 또렷하게 남은 추억의 장소다. 10년 전 나주인들과 함께 단편 영화를 찍었던 장소로.관리는 엉망이다. 찾는 이가 없기도 하겠지만 행정 편의주의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지붕은 짝퉁 짚으로 올렸고 마루는 먼지투성이다. 대울타리는 관리를 편하게 하려고 그랬는지 철심을 군데군데 심었다. 다행히 벌초는 돼있었다. 백룡산 들머리의 백동마을 수구맥이(정선생 높이 평가)를 촬영하고 급하게 좌회전으로 방향을 바꿨다. '여기 벚꽃이 좋아. 백룡저수지 때문에 일주일 늦게 피어' 정선생 얘기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답사객답다...
[답사] 추억을 호출하는 답사, 함평 자산서원(紫山書院) 정선생과의 답사는 주로 옛 추억부터 시작된다. 오늘은 장선생 추억이 화제에 올랐다. 8년 손 위인 장선생은 미술실을 찾았다, 나와 허선생 사이에 자리를 잡고 데생을 시작했다. 미술 입문은 나보다 늦은 셈이다. 정선생 지도를 받았으니 정선생과 우리는 '사제간'이고, 나와 장선생 사이는 '동문간'이다. 그런 장선생은 지금까지 붓을 놓지 않았으니 베테랑이 됐을 것이다. 내 퇴직이 13년이 됐으니, 장선생은 얼추 20년 가까이 됐지 싶다. 그 추억이 우리 답사의 실마리를 풀었다. '노숙' 정도 되는 인물이지. 내 평이다. 삼국지에서 주유가 공명을 죽이려고 할 때 그것을 말린 '노숙'을 생각나게 한다는 얘기였다. 정선생은 그림 그리기를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 지 몇 해 됐으니 장선생 뒤에 서야 되겠다는 얘기로 마무..
[답사] 다시 찾은 장성 '요월정' 2023년 8월 19일 토요일 이번이 3번째다.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지 않아 2주를 기다렸다가 갔던 것이 지난 일요일. 토요일이 아닌 일요일로 늦춘 것도 하루 늦추면 배롱꽃이 더 낫겠지 하는 정선생 염원이 담겼었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배롱나무는 좋은 꽃을 못 올렸다. 결국 한 주 물리어 찾은 것이다. 정선생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더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늙은 배롱나무'의 생산력 한계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도로 가로수로 심긴 '젊은 배롱'은 불타듯이 꽃이 오르는데 숲에 갇힌 늙은 배롱은 하늘과 맞닿은 위쪽만 성글게 꽃을 달고 있다. 그래도 노익장을 과시하듯 근육을 뽐낸다. 줄기 끝 몽글게 핀 꽃에 비하면 가지의 용틀임은 과연 '황룡'의 기색을 가졌다. 더디게 자라는 나무 특성상 이 정도 몸이면 몇..
[답사] 장성 요월정 원림 요월정 송강정 오르는 길과 흡사했다. 길 옆으로 육송과 배롱이 자유롭게 펼쳐진 위에 요월정은 있었다. 요월(邀月)은 '달을 맞이한다'는 의미였다. 꽃이 피기에는 요월정 원림 배롱은 나이가 많았다. 오던 길가 가로수 배롱은 젊음을 꽃으로 자랑했다. 요월정 원림을 이루는 배롱은 아직 봉우리도 갖추지 못했다. 정자 이름에 값하는 위치에 오르니, 배롱나무 하나가 꽃으로 자신을 뻐개고 있었다. '2주 후에 옵시다.' 정선생은 제안했다. 나도 응했다. 8월 중순에 다시 오기로. 정선생이 이번에 '요월정'을 찾은 것은 요월정원림의 수려한 배롱꽃을 앵글에 담기 위해서였다. 요월정 원림 해설은 이랬다. 요월정원림은 조선 명종(재위 1545∼1567) 때 공조좌랑을 지낸 김경우가 관직에서 물러나 은거하기 위해 지었다는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