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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창작,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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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창작,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시 창작에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작품의 깊이와 미학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는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표현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창작 원리이기도 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보이는 것’은 우리가 일상에서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현상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하늘의 구름, 나무의 잎사귀, 창밖을 내리는 비, 또는 사람이 살아가는 거리의 모습 등 눈에 뚜렷이 보이는 실재들이 바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 보이는 세계는 시인이 독자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되며, 감각적이고 생생한 묘사를 통해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과 현실감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시 창작이 오직 ‘보이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보이지 않는 것’이 등장합니다. 시 창작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보이는 사물이나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내밀한 감정, 기억, 의미, 관계성 등을 말합니다. 이는 인간의 내면세계, 심리적 진실, 존재의 본질, 상징적 의미, 무의식적 욕망이나 꿈, 삶의 진실처럼 보이는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다양한 차원의 진실입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메를로퐁티(Merleau-Ponty)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서로 끊임없이 얽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우리가 보이는 사물을 바라볼 때, 사실상 그 이면에 있는 ‘보이지 않는’ 의미와 감정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시 창작에서도 이러한 원리가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뛰어난 시인은 단지 보이는 풍경이나 사물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와 진실, 또는 독자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감정을 끄집어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메를리 퐁티(위키백과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표현

시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대표적인 방법이 바로 은유와 상징, 함축적 표현의 활용입니다. 은유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사물이나 개념을 연결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고, 독자가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진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합니다. 예컨대, “마음은 외로운 섬이다”라는 표현에서 ‘마음’과 ‘외로운 섬’이라는 서로 다른 두 대상은 하나의 은유로 연결되어 인간의 고독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정을 드러냅니다.

 

상징 역시 시 창작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시인은 구체적인 사물이나 이미지를 통해 추상적이고 내면적인 감정과 의미를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진달래’는 단순히 꽃이 아니라 슬픔, 사랑, 이별이라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이렇게 상징적 표현은 보이는 사물이나 풍경을 통해 보이지 않는 내면의 정서를 생생하게 드러냅니다.

긴장과 조화

또한 시에서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긴장과 조화입니다. 지나치게 보이는 세계에만 의존하면 작품은 피상적이고 단조로워지며, 보이지 않는 세계만 강조하면 작품은 추상적이고 모호해집니다. 시인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의 균형과 긴장을 유지하며 독자가 두 세계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점에서 보들레르와 제임스 조이스가 강조했던 ‘에피파니(epiphany)’는 중요한 창작적 개념으로 작용합니다. 에피파니는 일상의 보이는 순간 속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깨달음으로서, 시인이 보이지 않는 진실과 본질을 직관적으로 깨닫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순간입니다. 바슐라르 역시 상상력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는 힘을 강조하며, 시인은 상상력을 활용해 보이는 세계를 넘어 더 깊고 내밀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리

결론적으로, 시 창작은 보이는 세계를 정확하고 감각적으로 묘사하는 데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너머의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미묘한 관계성을 인식하고 이를 표현하는 능력이야말로 훌륭한 시 창작의 핵심입니다. 시인은 독자가 일상 속에서 보지 못하는 숨겨진 진실과 내밀한 세계를 발견하도록 돕고, 이를 통해 독자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는 시적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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