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항인과 여항인
'위항인(委巷人)'이라는 용어는 조선 후기에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조선 사회는 유교적 신분 질서가 매우 엄격했습니다. 중인 이하의 계급 출신은 양반의 신분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인 이하의 계급 출신 중에서 경제적인 안정과 양반들이 갖추고 있는 기본적인 소양을 함양한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양반의 신분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자신들의 소양과 재능을 발휘하여 문학, 음악,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켜 '위항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위항(委巷)'이라는 말은 '마을 밖에 있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위항인들은 양반들이 거주하는 마을 밖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위항인들은 신분적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들의 소양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선 후기 문학, 음악, 예술 등 다양한 분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여항(閭巷)'이라는 말도 '읍성 밖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여항인들은 양반들이 거주하는 읍성 밖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위항문학
'여항인'과 '위항인'은 같은 의미의 용어로 사용됩니다. 두 용어 모두 조선 후기에 나타난 새로운 문인 계층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위항인과 여항인 모두 중인 이하의 계급 출신으로, 경제적인 안정과 양반들이 갖추고 있는 기본적인 소양을 함양했습니다. 그러나 합법적인 방법으로 중인의 신분에서 양반의 신분으로 이동할 수 없는 신분적 굴레 속에 놓여있었습니다. 이들은 내면적 고통을 해소하는 방편으로 위항문학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음악 방면의 활동도 꼽을 수 있습니다.
위항인과 여항인의 등장은 조선 후기 문인 음악의 발달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했습니다. 음악 예술의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유교적 신분 질서가 엄격한 조선 시대에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양반 출신의 문인들과 함께 연주 활동을 펼쳤던 풍류방의 음악 문화는 위항인과 여항인들의 음악 향유 및 활동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 양반 문화와 서민 문화를 함께 수용하여 전파하는 역할을 하여 조선 후기 음악 문화 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위항인과 여항인의 음악 활동은 확대되어 더욱 개방적이고 포괄적인 형태로 존재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이전의 양반이나 사대부들이 전유했던 음악이 위항인과 여항인까지 확산되어 풍류방의 연주 형태로도 연주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위항인과 여항인들의 활동은 더욱 활발해질 수 있었으며, 음악 수용층의 확대에도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또 이들은 자유로운 음악 활동을 펼쳤는데 현실을 초월해서 정신적 자유를 누리는 창조적인 인간상, 그리고 예속과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예술 세계를 가꾸어가는 근대 지향적인 음악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즐긴 풍류는 자유와 평등 사회에 대한 의지 표출과 함께 더 넓은 세계를 지향한 마음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정리
위항인과 여항인들은 조선 후기 문학, 음악,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새로운 문인 계층입니다. 이들은 신분적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소양과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선 후기 문화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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