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다 보니 6회까지 줄창 봤다.
때는 1989년. 장소는 부여. 1989년에 6월항쟁이 있었으니, 변화 조짐은 있으나 독재 끝물 시기로 세상은 아직 폭력선상에 있을 시기다. 학교에서는 여전히 군사훈련을 위한 교련 교과가 있던 시절. 교사구타는 당연시했던 때다.
교련은 일제가 학교를 병영화 시키는 일환으로 도입된 제도로 박정희가 10월유신 이후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에 도입한 학교에서 익히는 군사 훈련 교과다. 학교 운동장에서는 집총훈련 목소리가 터지고, 교실에서는 수업 중 헤찰을 이유로 교사 몽둥이가 춤춘다. 맞은 학생들은 문제 학생들로 요즘으로 치면 일진 똘만이들. 즈그들 맞을 때 웃었던 얘들을 화장실로 불러 조지고, 그 안에는 지지리도 못난 병태가 있다. 아니 '븅태'가.
지지리 못난 병태가 갑자기 일진이 된 것이다. 이름이 비슷한 전설의 '아산 백호'로 등극한 것이다. '아산 백호' 경태는 남이 위에 있는 꼴을 못 보는 쌈장. 그 주먹이 춤추면 상대가 바로 무릎을 꿇는 그가, 사고로 기억을 잃은 도중에 의도치 않게 우리의 병태가 '아산 백호'가 된 것이다. 부여농고 패거리들이 부여공고, 부여상고 패거리들을 잡기 위해 올려놓은 우상에 우리 병태가 기세좋게(?) 오른 것이다.
그는 권좌에 오르고 지난날 얻어터지던 경험을 바탕으로 약자 보호까지 앞장서니 안팎으로 인기를 얻는다. 말도 안 되는 설정이지만 암울한 당시를 이해하는 데는 더없이 적절한 풍경이다.
병태는 이어 전학 오는 진짜 '아산 백호' 경태 출현으로 점차 무너지고 다시 옛날로 돌아간다. 아니, 더 험한 '지옥으로' 떨어졌다. 잠시 착한 척했던 경태는 부여를 손쉽게 장악하고 '이이제이' 전략으로 약자를 비참하게 만든다. 결국 경태 꼬붕이 된 병태는 유일한 친구 '호석'을 두들겨 패고 돈까지 뺏는 불상사가 생겼다. '맞고 사는 것도 하나의 지혜'라는 호석의 용서에 병태는 울면서 사과하는 장면이 6회 말 상황이다. 드라마가 어느 쪽으로 튈는지는 갈피 잡기 어렵다마는 사람의 맘이란 참으로 교활하고 약해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상황까지 쉽게 도달하기도 한다. 무수한 사람의 희생 위에 세운 민주사회도 어느 순간 쉬 무너지는 것을 보면 말이다.
다음을 기대하게하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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