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산소에서
"형님, 자전거로 서울 가셨어요?"
태뫼 산길을 오르는데 고종 동생이 놀란 눈으로 묻는다.
그렇다고 답했다.
"그 먼데를 어떻게..."
한계령도 넘었는데. 해본다.
사실, 설악산 삼대령을 자전거로 넘었다.
진부령, 한계령은 한 번, 미시령은 두 번.
놀란 동생이 합동제사가 끝나고 다시 묻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칠십이 다된 나이에.
우쭐 모드로 시베리아 횡단 계획을 비친다.
얘기는 점입가경.
장거리 자전거 여행
자전거로 서울을, 설악을 간다는 것은 내가 사는 광주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로 가는 것이 아니다. 아니, 골병나 죽을 일이 있나!
점핑을 하는 거다. 광주에서 고속버스 짐칸에 자전거를 싣고 상경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승객들 화물이 많았지만 택배가 일반화된 요즘은 짐칸이 널널하다. 여기에 자전거를 태우고 나도 타고 서울을 가는 거다. 그리고 한강을 달리고 인천까지 씽씽.
설악산 미시령을 넘을 때다.
성남 친구를 만나 지하철로 용문산까지 갔다. 그리고 길 따라 달렸다. 터널이 많아 곤혹스러웠지만 그럭저럭 신남에 도착했다. 사실은 원통에서 자려했는데 중간에 비가 오고 어두워져 신남에서 잤다. 하필 그때 인제에서 오토바이족들 축제가 있어 여관을 구하지 못해 식당을 겸업하는 당구장 주인 배려로 당구장에서 잤다. 신남이란 남면이라는 본래 지역이 있었는데 새로이 생긴 남면이라는 의미이다. 과거 원통에 있는 부대에 귀대할 때 반드시 거치는 지역이었다. 나는 군생활을 '원통'에서 3년간 했었다. 소양강 근처에 오면 항상 정겹다. 소양강에서 모래 작업을 하다 만난 빨간 수학여행 긴 광주고속버스를 보면 미칠 듯이 기뻤다. 당시는 학생들이 많아 버스 행렬이 긴 기차가 가는 듯이 길었다. 그 자극적인 빨간 긴 버스를 상상해 보라.
각설하고...
우리는 비 오는 밤길을 약한 라이트에 의존해서 신남에 왔던 것이다. 젖은 옷을 말리려 선풍기를 틀어 놓고 밤을 새웠는데 선풍기 날개를 날려 먹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날 원통을 거쳐 미시령을 넘었다. 7월 더위에 미시령을 넘는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쳤다. 거의 그로기 상태에서 도착한 미시령 정상. 전개되는 동해 바다와 내려가는 가파른 길이 보상해줬다.
자전거는 내 생활
미시령 정복은 내 인생에서 자전거가 내 생활로 들어온 일대 사건이었다. 그 후로 십에 팔은 자전거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대전 세미나에 갈 때도, 서울 딸네 집을 갈 때도 자전거를 휴대한다. 휴대? 아니 자전거를 동반한다. 자전거는 내 동반자가 됐다.
광주에서 시골 내 집은 40킬로. 백리길이다. 과거 대학 다닐 때도 자전거로 오가곤 했다. 그러나 직장 생활 이후로는 차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다. 그러던 내가 미시령 정복 후에는 자전거로 다닌다. 어떨 때는 하루에 왕복하기도 하고, 갔다가 하루 저녁을 보내고 다음날 오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나주공공도서관에 들려 시골에 가기도 한다. 올 때는 영산포에 있는 나주시립도서관을 들렀다 오기도 한다. 동반자 자전거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적당하게 피곤하게 하고 적당하게 즐거움을 준다. 더도 덜도 아닌 적당한 기쁨! 이것이 자전거 동반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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