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회고
2009년.
교사 시절.
어떻게 하면 교실수업을 재밌게 할까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일환으로 군산 대건고를 찾아 연수를 받았습니다. 당시 교장선생님은 존경하는 박종채 선배님. 우리 일행은 새벽 안개를 가르고 즐겁고 의미있는 수업을 위한 발걸음을 했습니다. 그날이 2009년 1월 17일. 다음날은 일요일 방송고 수업이 있었습니다.
그 수업 풍경을 13년이 지나서 반추해 봅니다.
수업 일기
오늘은 방송고 출석수업일.
3학년 '생활경제' 금학년도 마지막 시간이다. 오늘 수업 주제는 '경매'. 물건을 경매하는 것은 아니고 가치관을 경매하는 것이다. 어제 대건고 연수를 통해 익힌 이큐(EQ)프로그램 중 하나를 적용하기로 했다.
교실로 들어서면서 바로 분위기를 풀었다.
손을 들어 모관운동을 시작했다. 다음에 손깍지를 끼고 천정을 향해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양팔을 귀 뒤로 번쩍 쳐들게하고 왼쪽으로 한번, 오른쪽으로 한번 스트레칭을 했다. 이어 손을 깍지끼고 안으로 돌리고 밖으로도 돌리면서 몸을 풀었다. 이것은 대건고 패스(PESS)프로그램으로 말한다면 피큐(PQ). 성인 학생들의 뻗뻗한 몸을 가벼운 운동으로 긴장을 푼 것이다. 물론 박수도 유도했다. 부드러운 분위기와 대화를 할 수 있는 허용적인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 여러 종류의 박수를 쉴새없이 바꿔가면서 쳤다. 손바닥, 손목, 손옆구리, 손등에 이어서 손가락 박수까지. 이어서 몸 여기저기를 주먹으로 토닥거리고 쓰다듬게 했다. 이어 짝꿍의 등을 두들기고, 교대 시켜 가며 분위기를 부드럽게 했다. 그 사이에 나는 학습 주제인 '가치관 경매'를 칠판에 적었다.
가치관 경매
피큐프로그램이 끝나자 바로 이큐 과정으로 들어갔다.
"오늘 여러분에게 개인당 백만원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사용하시고 남는 것은 설빔 사시는데 보태 쓰십시오."
웃음을 유도하면서 개인당 백만원이 지급됐음을 알리고 확인했다.
"아무개님, 백만원 받으셨죠?"
"네..."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즐거운 표정이다.
이어서 학습지를 배부했다. 학습지는 어제 대건고에서 받아온 '가치관 경매' 프로그램으로 학습자의 선택과 결정을 도와주면서 얘기꺼리를 찾는데 도움을 준다.
"먼저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세가지를 선택해서 적으십시오. 시간은 1분입니다."
본래 항목보다 2개를 줄였다. 참여 학생이 많기 때문에 선택 항목이 많을 수 없어 3개만 선택하게 했다. 성인 학생들은 판단하고 선택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잘 따라오는 학생은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큰 문제는 아니다. 우선 프로그램 내용의 대강을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당히 빠른 템포로 진행했다. 머뭇거리면 본말이 전도될 수 있다.
"자, 선택한 항목에 금액을 할당하십시오. 할당할 전체 금액은 백만원입니다."
이렇게 경매를 준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몇가지 경매 유의사항을 제시했다.
경매에 들어갔다.
"1번 품목은 '만족스러운 결혼'입니다. 십만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네 10만원 나왔습니다. 20만원......"
이렇게 시작한 경매는 처음에는 좀 서툴렀다. 그러나 몇 항목을 진행하니 요령이 생겼다. 각화동 시장의 경매 풍경을 그리면서 목소리를 굴리니 큰 힘들이지 않고 진행됐다. 이렇게 경매한 시간이 10여분. 경매품목 20항목까지 모두 입찰이 끝났다. 낙찰될 때마다 품목 번호와 입찰 금액과 낙찰된 학생 명단을 칠판에 적었다. 20개 항목은 칠판 하나를 가득 채웠다.
"자 이제 여러분이 애초에 할당한 금액과 자신의 입찰 금액을 학습지 해당난에 적고 비교해 보세요. 또 최고 낙찰액도 적어 보세요."
학생들이 학습지를 기록하는 동안에 나는 낙찰된 내력을 교사용 학습지에 기록하고 가치 순위도 매기면서 학생들이 선택한 내용도 분류했다.
"이어 뒷페이지의 세 항목을 기재하세요. 첫째는 자신이 구입한 가치, 둘째는 자신의 소원대로 되었는지 여부와 그 이유를. 마지막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느낀 소감을 적으세요. 주어진 시간은 2분입니다."
이와같이 비교적 빠른 템포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발표할 학생을 머리에 그렸다. 발표를 쉽게 풀어나갈 수 있는 학생을 먼저 선택했다. 아무래도 칠판에 기록된 내력과 관련있는 학생이 무방할 것 같아 가장 효율적인 구입을 한 학생을 지명해서 발표를 시켰다.
발표는 쉽게 이뤄졌다. 나이든 학생들은 할 얘기가 많았다. 어떤 학생은 건강의 소중함을, 어떤 학생은 우정에 대해서 발표했다. 졸업을 앞둔 우리 학생들에게는 급우들 간의 우정이 소중한 가치였던 것이다. 어린 학생은 '진정한 사랑'에 백만원을 올인할 생각이었는데 경합이 없어 삼십만원에 낙찰됐다고 좋아했다. 그 친구는 평소에 별로 말이 없던 학생이었다. 차별이 서러웠다는 혼자사는 어머니도 있었고, 노인들이 모여사는 곳에 봉사갔다가 한없이 울었다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10만원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경합이 없어 좋은 품목을 구입할 수 있었다는 발표도 있었다.
수업 후기
'생활경제' 시간이라서 경매에 대한 개념을 잡는데 도움을 주려고 시도했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부수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소극적으로 듣기만 하던 학생이 발표 기회를 갖기도 했다. 젊잖아서 통 의사 표현이 없던 학생이 봉사와 관련된 품목에는 손을 번쩍 들면서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각각의 달란트를 잘 활용하면 우리 사회는 아름답고 살기좋은 사회가 되리라. '비교하면 불행해 집니다.'라고 얘기한 어제 대건고 교장신부님 말씀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오늘 쓰고 남은 돈은 설날 떡국 장만하는데 보태 쓰십시오."
큰 인심(?)을 남기고 돌아나오는데 가슴 한켠이 흐뭇했다.
어제 도움을 줬던 대건고 선생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후기
13년이 지났는데도 그 수업의 잔상이 남았습니다. 나는 당시 방송고 교무를 보면서 나이든 학생분들에게 무한애정을 느꼈습니다. 그분들의 학습 열정에 제가 영향을 받았으니까요. 제 노년 학습 계획의 밑거름은 이때 쌓인 것입니다.
'즐거운 인생' 카테고리의 다른 글
Udemy로 공부하며 영어학습까지 (0) | 2021.12.02 |
---|---|
장애우들이 만든 쪽빛바다 (0) | 2021.11.24 |
자전거는 내 생활 (0) | 2021.11.22 |
강진1박2일 맛여행 (0) | 2021.11.21 |
모든 패밀리가 모이는 태뫼 합동제사 (0) | 2021.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