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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독서/교양도서

우린 너무 몰랐다, 도올 김용옥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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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저작

도올 김용옥 선생의 저서는 대단히 많다. 도올 저서는 우선 재밌다. 막힘없이 전개되는 글에는 늘 신선함이 있다. 주로 동서양의 사상과 철학에 대한 책을 펴내던 도올이 '현대사'에 관한 서적을 출판한 것이다.

현대사는 다루기 힘든 부분이 많다. 현존하는 인물과 세력들이 있고 아직 평가하기에는 이른 사건들이 많기도 하려니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이념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펴낸 책이다. 가슴 아픈 내용이 많아 수울 술 익히지는 않는다. '샤오똥' 선생까지 출연시키며 재밌게 서술하는데도 우리 현대사는 너무도 암담했던 일들이 많았다. 지금 이 시간까지도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세력의 힘은 끊이지 않고 사회 곳곳을 차지하고 있지 않는가?


제주도 출신 이발사 이야기

도올 선생은 이발을 산 넘어 단골로 다니는 이발사가 있다 하신다. 그는 늘 도올 선생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며 자기화 시키는 도올 학당의 모범학생인 셈이다. 단골 고객과 이발사 사이에 이야기가 오가는 중에 이발사의 기막힌 사연을 듣는다. 그가 어렸을 때 제주도 화북리 곤을동에서 당한 얘기다. 그는 어린 나이에 부모가 죽창에 찔려 시체가 되어 떠내려가는 참혹한 현장을 본 것이다. 혈혈단신으로 제주를 탈출한 이발사는 건실하게 생활하면서 오늘의 기반을 다진 것이다. 그가 고향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죽을 때까지 가볼 생각이 없단다. 부모님 돌아가신 날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발사는 그날이 되면 안방에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모신다고 한다.

제주4·3 역사는 이 이발사의 삶이 대변한다는 도올 선생의 언급에 감성 무딘 내 눈이 촉촉해진다.

책 '우린 너무 몰랐다' 표지

해방, 제주4·3과 여순민중 항쟁을 옆에서 조근조근 얘기하는 듯이 전개되지만 그 아픈 상처가 절절하게 전해진다.


제주 KBS홀에서 울려퍼진 '슬픈 제주'

도올 선생은 2018년 11월 17일 제주KBS에서, "제주4·3을 말하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다. 그 3부 마지막을 옮겨본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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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픈 제주 >

나는 슬픕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슬픕니다. 여러분도 슬픕니다. 무언가 머리를 헝클어트리고 가슴을 짓누릅니다.

제주는 슬픕니다. 제주는 슬픕니다. 지금 여기 누군가 일어서서 제주는 슬프지 않다고 말한다면 나는 외칩니다. 그대는 위선자! 그대는 진실을 외면하는 거짓말쟁이, 연기(緣起)의 굴레를 망각한 허구!

제주는 슬픕니다. 진실도 화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 둘러대는 말일 뿐, 존재하는 것은 오직 슬픔뿐입니다.

슬픔에는 이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이념적 상찬이나 폄하나 언어의 꾸밈이나 위로도 모두 제주를 자기 구미대로 말아먹고 싶어하는 인간들의 장난에 지나지 않습니다. 슬픔은 그냥 슬픕니다. 영원히 슬픕니다. 그 기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억은 절대 자살하지 않습니다. 아라야식의 굴레 속에서라도 끝없이 자기생명을 유지합니다. 우리가 제주를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슬픈 제주를 슬프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 슬픔에 동참하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슬픔을 슬프게 느낄 때만이 그 슬픔은 정의로운 에너지를 분출합니다.

슬픈 제주는 알고보면 우리 민족 전체의 모습입니다. 슬픈 제주는 외딴 섬의 이야기가 아니라 조선대륙 전체의 이야기입니다. 조선민족의 외세에 대한 항거, 관념적 폭력에 대한 저항, 분열획책에 대한 주체적 항변, 정치적 · 사회적 압제에 분연히 일어서는 민중의 항쟁, 이 모든 것이 제주라는 고립된 무대 위에서 극적으로 구현되어 왔습니다.

오늘 이 순간, 남북이 분열되고, 미국 · 러시아, 미국 · 중국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고, 일본의 야욕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이 순간, 제주의 슬픔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슬픈 아일랜드에서 예이츠, 버나드 쇼, 사무엘 베케트, 오스카 와일드, 조나단 스위프트,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세계문학의 거성들이 쏟아졌듯이, 나는 앞으로 슬픈 제주에서 백두에서 한라까지 그 모든 생의 약동을 하나로 통합하여 분출하는 세계문명의 거대한 축이 탄생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제주의 사람들이여! 우리 같이 슬픔을 말합시다! 슬픔을 노래합시다! 우리의 슬픔을 조작하는 모든 관념으로부터 해탈합시다!

나는 말합니다. 종교도, 정치도, 국가도, 어떠한 위대한 형이상학도 한라산 기슭 해안가 현무암에 덮인 이끼 한 오라기일지라도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당오백 제주도 해녀의 경건한 생명력 앞에 무릎을 꿇어라!


대한민국 교양필독서

마지막으로 뒷 표지에 적힌 내용을 옮겨본다.

이 책은 사상이 아니라 운동이다.
이 책은 역사서술이 아니라 우리 의식에 던져지는 방할이다.
가치를 추구하는 자라면 이 책을 읽은 후 얻어지는 깨달음을,
그 잊혀진 역사를 만세 만민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우린 너무 몰랐다' 뒷 표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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