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색과독서/교양도서

잘 익은 시 같은 만화, 빨간 자전거

728x90
반응형

마지막 풍경

"오늘 결혼식 행사차는 오전 8시에 출발합니다."

 

10년 전에 그 방송이 마지막이 됐습니다. 요즘에도 차를 대절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제 경우는 그때가 마지막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얘기들만 골라 만들어진 만화책이 있군요. '빨간 자전거' 시골 우체부가 보는 옛동과 새동의 시골 이야기가 잘 익은 시처럼 맛깔나게 씌었네요.


은행나무집

임하면 야화리 마을의 주소는 이런 식입니다. '햇살이 잘 드는 집', '난초 향기 가득한 집', '새가 쉬어가는 집', '밤에 보면 제일 예쁜 집' 등입니다. 우리 집은 그런 식으로 짓는다면 '가장 오랜 은행나무집' 정도로 해야할 것 같군요. 우리집 은행나무는 147년째 우리 식구이니까요.

 

시골 노년들 이야기는 현실성이 없지만 주소만은 실감이 납니다. 몇 안 되는 시골집마저 '60-28' 이런 식 멋대가리 없는 주소보다는 '오랜 은행나무집', '얼마 전까지 경운기가 있던 집', '태뫼에서 제일 가까운 집' 등이 낫지 싶습니다.

 

'시인의 집'에는 항상 시 한 편이 적힌 접힌 종이가 있습니다. 빨간 자전거를 타는 우체부는 그 시를 꼬박꼬박 모으는 재미를 즐깁니다. 그날따라 우체함에 접힌 종이가 없습니다. 대신 낙엽 한 잎이 있습니다. 낙엽에는 곱게 적힌 시 한 편이 있습니다. '시몬, 나무 잎새 져버린 숩으로 가자. ......' 레미 드 구르몽의 시 낙엽이었습니다.

 


 

눈오는 날의 우편배달부

눈이 하얗게 쌓인 야화리에는 자전거로 편지 배달은 어렵습니다. 빨간 자전거는 잠시 쉬는 날입니다. 그러나 우편배달부는 쉴 수 없습니다. 두툼한 방한복과 방한모를 둘러쓰고 배달 가방을 어깨에 메고 나섭니다. 빨간 목도리가 가볍게 날리는 우편배달부의 모습은 참으로 운치가 있습니다. 

 

그렇고 그런 시골 생활을 참 이쁘게도 썼네요. 시골 현실은 어렵더라도 이런 만화라도 있으니 숨을 쉴 만하군요. 어쩌면 풍경도 이쁘게 그렸는지. 갑자기 시골이 그리워지는군요.


 

시골집 인테리어

시골 집 인테리어는 역시 메주. 아니면 시렁에 매단 마늘과 홍시. 아참 더 대단한 것이 있습니다. 시래기를 널어 만든 울타리이군요. 게다가 여름내 익힌 조롱박을 켜서 말리는 장면이라니. 참 생각도 잘했네요. 지금은 구경도 어려운 멍석까지 말아서 인테리어를 마감했군요.

 

한 가지 더 있었군요. 마루를 장식한 늙은 호박 몇 덩어리. 거기에 토방에서 집을 지키는 누렁이까지.

 

사실은 만화에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임하면 야화리는 지도에 없는 마을이니까요. 우리 기억 속에 남아있는 추억의 한 장면일 수밖에.

 

현실적이지는 않아도 요즘 시골에도 이런 집에 우체부 한 사람쯤 있으면 좋지 싶은데, 생각뿐이겠죠.


 

정리

김동화 만화 에세이는 2013년 1쇄 발행하여 2020년 3쇄 발행한 책이었습니다. 김동화 작가는 만화를 시처럼 구성했더군요. 이름만큼이나 이쁜 만화를 그리는 김동화 씨의 건필에 파이팅을 보냅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