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단편 소설 '안해'
방통대 국문학과 2학년으로 편입해서 '현대 소설의 이해와 감상'이라는 과목을 수강했다. 6강이 김유정의 소설 '안해'이다. 1930년대 배경으로 쓴 농촌소설이다. 못 생긴 아내를 구박하는 남편이 서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강의에서 소개된 진행 순서는 아래와 같다.
'안해' 입장에서 바꿔 쓰기
이 소설은 원고지 50장 정도의 짧은 단편이다. 길이에 비해 당시 농촌을 알 수 있는 코드가 상당히 많다. 특히 '들병이'라는 새로운 풍조에 대해서 저자는 소설에서 말한다. 다른 소설에서도 '들병이' 문제를 끄집어낸다 하니 당시 농촌의 어려운 삶 못지않게 변해가는 세태를 짐작할만하다.
'안해' 바꿔 쓰기
놈은 나를 못났다고 구박이 여간 아니다. 그러나 놈도 잘 난 것도 없다. 기럭지가 긴 것도 아니고 논 마지기 있는 것도 아니다. 겨울에는 나뭇짐을 쳐와 겨우 입에 풀칠하는 처지에 내가 못났다고 거들대는 것을 보면 우습다.
여튼 놈은 내가 똘똘이를 낳고 난 뒤로는 나를 대하는 것이 전보다는 낫다. 똘똘이를 지 자식이라고 떠들지만 어디 지 자식이냐. 내 속으로 난 내 자식이지. 배 아파보지도 않고 지 자식이라고 뻐기는 것을 보면 오장이 뒤집힌다.
요즘 들어 나무장사도 신통치 않다. 놈에게 슬쩍 말을 꺼냈다. 내가 들병이로 나서면 생활이 낫지 않겠냐고. 놈이 덥석 문다. 돈 벌어 온다는 얘기에 깜박해서 나에게 노래를 가르치겠다고 한다. 놈이 언제 노래를 배웠는지 썩 잘 부른다. 노래 부르는 내 솜씨가 지진하니 놈은 가르치면서도 구박이다. 못생긴 것이 노래까지 별로라고. 놈이 하는 것이 치사해서 야학에 나가기로 했다. 건넌 마을에 학교 물 먹은 젊은 청년이 야학을 열었단다. 거기 가서 창가도 배우고 요즘 뜬다는 댄스도 배우련다. 놈한테 배우는 것보다는 한 살이라도 어린놈이 좋지 싶다.
야학에 가서 배운 창가를 슬쩍 내비쳤더니 놈이 놀랜다. 어디서 배웠냐기에 야학에서 배웠다고 했다. 놈이 은근슬쩍 떠본다. 야학 선생이 어떠냐고. 뭐 그렇다고 대충 둘러댔다. 사실 놈보다는 훨씬 낫다. 기럭지도 길고 말도 또박또박 알기 쉽게 한다. 제일 좋은 것은 욕을 안 한다는 것이다. 놈은 말 열 마디 하면 네 마디는 욕이다. 하긴 나도 놈 못지않다. 놈이 네 마디 욕하면 나도 두 마디는 한다. 똘똘이가 지켜볼 때는 욕이 턱까지 뻗치지만 참는다.
들병이로 나서려면 수단이 좋아야 한단다. 내 얼굴이 받쳐주지 못하니까 수완이라도 발해야 할 것 같다. 옆 마을 뭉태가 슬슬 수작을 걸어온다. 담배도 피어야 한다고 은근슬쩍 권한다. 한 대 빨았다. 쓰디쓴 연기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빨아대누 싶었는데, '가슴에 피'가 쑥 내려간다. 놈이 하도 욕을 밥 먹듯 해서 걸린 답답증이었던 모양이다. 뭉태가 술을 권한다. 놈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 뭉태한테서 일어난다. 나는 뭉태와 맏상으로 술을 나눴다. 그런디 놈이 이 장면을 봤다. 놈이 속은 쓰리지만 제 잇속이 있으니까 못 본 척하고 지나칠 것이지. 존심은 있어가지고 상을 들입다 부시고 뭉태를 짓이긴다. 그러는 놈을 보니 은근히 없던 마음이 간다.
놈이 뭉태 일을 보고 난 뒤로는 수심이 많아졌다. 나한테 하던 욕도 줄었다. 대신 자꾸 새끼를 더 낳자고 한다. 자식이 살림 밑천이라나. 아들 하나에 섬지기는 받을 수 있으니 다른 농사보다 자식 농사가 훨씬 낫다는 얘기다. 그도 그렇다. 우리 같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처지에 나이 들면 자식만 한 것이 있겠냐 싶다. 들병이 안 해도 된다 생각하니 놈의 제안을 못 이긴 척 받아들이는 것이 좋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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