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색과독서/교양도서

염상섭의 만세전과 삼일절

728x90
반응형

만세전(萬歲前)

원래 '묘지'라는 제목으로 1922년 '신생활'에 발표됐다가 3회 만에 일제의 검열에 걸려 잡지는 폐간되고 연재도 중단됐다. 1924년 시대일보에 다시 연재하면서 '만세전'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다. 만세는 기미독립만세를 의미하고, '전'은 앞 '前'이다. 문법에 맞춰 쓰면 '만세 전', 이렇게 써야 되지 않나? 소설의 얘기는 만세가 있기 전의 겨울 이야기다. 즉 '1918년 겨울' 서울 사는 20대 주인공 이인화가 동경 유학 중에 아내 죽음을 앞두고 귀국하면서 겪은 식민 치하의 모멸 경험과 자신의 분열 의식을 묘사한 소설이다.

 

무덤 같은 조국

애초 '묘지'라는 이름으로 발표됐을 정도로 일제 치하에서 멸시와 수모를 당하는 조선 민중의 삶과 저급한 생활이 주인공을 '질식'하게 만든다. 주인공은 조혼 풍습에 의해 일찍 결혼했다. 정이 없는 아내의 위독 전보를 받고도 자주 다니는 카페의 여급을 만나는 짓거리를 하는 철없는 주인공이다. 고베에서는 아는 여학생 기숙사를 찾기도 한다.

가기 싫은 길이다. 부산으로 가는 관부 연락선을 타면서부터는 계속 사찰과 감시를 받는다. 게다가 배편에서는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충격을 받는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12번이나 조사나 감시를 받는다.

동경 유학생으로 있을 때는 몰랐던 피지배 민족의 멸시를 기차를 타고 배를 타면서 생생하게 체험을 하게 된다. 물론 이인화는 일본인으로 보이고 싶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검색당하고 심문은 피할 수 없었다.

2023년 삼일절

이번 삼일절 기념사는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는 내용을 쏙 뺐다. 삼일절 기념사는 일본의 야만적 과오를 반성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번 기념사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진정한 반성 촉구 대신.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합니다.'라고 우리가 반성해야 한다고.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라고, 하면서 한미일 3자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다른 때도 아닌 삼일절 기념사에서 나올 언사로는 뭔가 미덥지 않다. '만세전'을 몇 페이지라도  읽었다면. 아니, 최근 발표된 영화 '영웅'  한 대목이라도 봤다면 이런 기념사가 나올까 싶다.

염상섭의 만세전

만세전은 1948년 수선사를 통해 출간되면서 오늘날 만나는 작품이 됐다. 일제하에서 자기 검열을 통해 내비치지 못한 부분을 보완했다. 일제의 슬픈 과거를 묻으란 말인가?

더 나아가  터지는 발언들 기가 막힌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