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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독서/교양도서

삶이 고달퍼도 일제에 협조하지 않은 소설가, 현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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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날

나는 종일 인력거로 손님들을 날랐다. 궂은날이지만 손에 잡히는 돈 맛에 아픈 아내 생각마저 접고. 남대문을 향하는 길에 집이 가깝지만 들어가 볼 수 없다. 돌아오는 길에 친구를 만나 주막에 들렀다. 한 잔 두 잔, 거듭되면서 술잔을 비운다. 대작하는 친구가 불안해한다. 나는 거들먹거려 본다. 돈 있다고. 엽전을 쏟아 보기도 한다. 술기는 점점 오른다. 친구는 집에 어서 가라 조른다. 40전을 썼다. 술을 더 원했다. 울다 웃다  하면서 1원을 썼다. 오늘 운은 좋았다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문간에 이르렀는데 기척이 없다. 뭔가를 빠는 소리가 들렸다 끊어진다. 마중 나오지 않냐고 욕을 섞어 소리를 지른다. 그래도 소식이  없다. 방에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툭하고 걸린다. 나무토막 같다. 어린놈이 뭘 빨다 말고 운다. 힘이 받혀 울음도 기어 나온다.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더럽게도 운 없는 날이 되고 만다. 술을 먹지 않고는 달랠 수 없는 불안.

그는 어려운 속에서도 문학의 열정을 키웠다.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1936년 베를린 하계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는 '손기테이'라는 어설픈 일본 이름으로 출전할 수밖에 없었다. 마라톤 금메달을 획득했다. 기쁜 일이지만 일장기를 가슴에 달 수밖에 없는 웃픈 현실. 1936년 8월 13일 동아일보 손 선수 사진에 일장기를 지웠다. 그 사건의 중심에 당시 동아일보 현진건이 있었다. 그 사건으로 1년 옥살이를 한다. 출옥하면서 사직하고 닭을 키웠다. 1943년 향년 44세로 폐결핵과 장결핵으로 별세했다. 그는 끝까지 버텼다. 가난이 목을 졸라도.

일제의 비열한 요구를. 막았다.

일장기 말소

현진건은 1900년생이다. 2년 후에는 김소월 이태준이 태어난다. 정지용도.

암울한 시기에 우리글을 갈고닦을 인재들이 무더기로 태어난다. 그들이 있어 오늘 한국이 있고 한류가 생겼지 싶다.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는 '술심'으로 버틸 수밖에 없는 청춘의 어려움이 그려진다. '빈처'는 날마다 전당포에 물건을 맡겨 생활을 버티는 아내 이야기다. 아내는 본래 잘 살던 집의 규수였다. 그런 그녀가 문학도의 아내가 되어 가난을 감당하면서 자존심 강한 남편을 지킨다. 쓰리고 쓰린 아픈 얘기다.

그 한가운데 '일제'가 있다. 반성 없는 '일제'를 동냥하듯 동반자가 되자고 하는 꼬락서니가 속이 뒤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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