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1565년(명종 20)에 지은 12수의 연시조. 현재 이황의 친필로 제작된 육필본이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서원(陶山書院)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2수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언지(言志)'와 '언학(言學)'입니다. '언지'를 '전6곡', '언학'은 '후6곡'이라 불립니다.
도산십이곡의 전6곡, '언지'
제1곡
이런들 엇더하며 뎌런들 엇더하료
초야우생(草野遇生)이 이러타 엇더하료
하말며 천석고황(泉石膏肓)을 고텨 므슴하료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초야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시비를 벗어나 산들 어떠하랴
하물며 자연을 버리고는 살 수 없는 마음을 고쳐 무엇하랴
제2곡
연하(煙霞)로 집을 삼고 풍월(風月)로 벗을 사마
태평성대(太平聖代)에 병(病)으로 늘거가뇌
이 듕에 바라난 일은 허므리나 업고쟈
안개와 노을로 집을 삼고 풍월로 벗을 삼아
태평성대에 병으로 늙어가네
이 중에 바라는 것은 허물이나 없애고자
제3곡
순풍(淳風)이 죽다하니 진실(眞實)로 거즛마리
인성(人性)이 어지다 하니 진실(眞實)로 올한 말이
천하(天下)에 허다 영재(許多英才)를 소겨 말삼할가
순박한 풍속이 죽다니 진실로 거짓이라
인성이 어질단 말이 진실로 옳은 말이라
천하 허다한 영재를 속여 말하실까
제4곡
유란(幽蘭)이 재곡(在谷)하니 자연(自然)이 듯디 됴해
백운(白雲)이 재산(在山)하니 자연(自然)이 보디 됴해
이 듕에 피미일인(彼美一人)을 더옥 닛디 몯하얘
그윽한 난이 계곡에 있어 자연이 듣기 좋아
흰구름이 산에 있어 자연이 보기 좋아
이 중에 저 미인을 더욱 잊지 못하여라
제5곡
산전(山前)에 유대(有臺)하고 대하(臺下)애 유수(流水)ㅣ로다
떼 만흔 갈며기난 오명가명 하거든
엇더타 교교백구(皎皎白駒)난 멀리 마음 하는고
산 앞에 높은 대가 있고 대 아래에 흐르는 물
떼 지어 갈매기는 오락가락 하는구나
어쩌다 어진이는 다른 곳으로 떠나는고
제6곡
춘풍(春風)에 화만산(花滿山)하고 추야(秋夜)애 월만대(月灣臺)라.
사시가흥(四時佳興)이 사람과 한 가지라.
하믈며 어약연비(魚躍鳶飛) 운영천광(雲影天光)이아 어늬 그지 이슬고.
봄산에 꽃이 만개하고 가을밤에는 달빛이 가득한데
사계절 아름다운 흥취가 사람과 마찬가지로다
하물며 물고기와 솔개가 놀고 구름과 하늘빛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언지(言志)
퇴계 이황(1501~1570)은 연산군 7년에 7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무오사화(1498)와 갑자사화(1504)의 중간쯤에 태아 났습니다. 무오사화는 훈구대신들이 사림파를 밀어내는 과정이고, 갑자사화는 연산군이 훈구대신을 몰아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참으로 혼란한 시기에 태어난 이황은 7개월 만에 아버지까지 별세합니다. 어머니 박 씨의 보살핌(훈도) 아래 총명한 자질을 키웠고, 도연명의 시를 즐겼다고 합니다. 그런 자연을 벗하는 기질이 시조에 반영됐습니다.
퇴계 선생은 벼슬길에 오르기도 했지만 사양도 많이 합니다. 중종과 명종, 선조에 이르기까지 매번 임금의 총애(존경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를 받는 덕인이었습니다. 그는 60세에 '도산서당'을 마련하고 많은 제자를 길렀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남명 조식(1501~1572)과 유사합니다. 영남 성리학을 대표하는 퇴계와 남명은 태어난 해가 같은 1501년이군요. 물론 남명은 평생을 벼슬을 멀리한 처사였지만, 퇴계는 상당 기간 벼슬을 했습니다만 항상 떠나기를 간구했습니다. 무려 20여 차례나 벼슬을 사양했다고 하니 그 기저는 같지 싶습니다.
그런 마음이 도산십이곡 전6편에는 배어 있습니다. 제1곡의 '이런들... 저런들...'로 출발할 때는 이방원의 시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퇴계는 초야에 묻혀 자연을 벗하는 자신의 삶을 예찬하는 것입니다. 방원이 이리저리 얽혀서 같이 정치를 하자는 얘기와는 정반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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