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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

전방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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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시절

생각하기 싫어하는 친구도 있다.

나는 군 시절을 가끔 그린다.

맑은 소양강을 따라 군가를 부르며 아침행군을 했던 기억은 지금도 새롭다. '동이 트는 새벽꿈에 고향을 본 후......'로 시작하는 군가는 개운했다. '때려잡자...' 구호에 비해. '외투 입고 투구 쓰고......' 등 옛스런 표현이 정겹기까지 했다. 그리고 군화를 질끈 매고 행군에 나선다. 군화가 아니지. 통일화.

설악산 장수대를 거쳐 한계령으로 향하다가 유격장으로 간다. 유격 훈련은 가을에 했다. 10월 설악은 단풍으로 옷을 입는다. 힘든 훈련을 가을에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두줄타기와 외줄타기 순서 쯤 오면 설악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위치가 된다. 힘든 훈련 중에 뱀불고기로 힘을 돋운 뒤라 뱃심도 든든했다. 외줄은 뒤집혀 파란 가을 하늘을 즐길 수 밖에. 그러나 흔들리는 두줄은 무섭지만 황홀했다.

그런 시절이 왜 그립지 않겠는가?

물론 싫은 기억도 많다.

추운 겨울, 팬티 바람 집합. 취침 점호 뒤, 화장실 구타 등. 생각조차 싫은 기억도 있다.

똑딱집

수송부 보초를 서는 날이다. 여수 출신 고참 둘이 휴가 전에 신바람 났다. 두 고참은 나보다 6개월쯤 빨리 입대한 분들이다. 첫 휴가라 들떴다. 그들은 똑딱집에서 술과 안주를 구해 휴가 자축을 했다. 경월 소주에 라면땅이 전부이지만 군대에서 야간 음주로는 성찬이다. 그들은 신병인 나에게도 축하연 참여를 허락했다. 한잔 빨았더니 술기가 오른다. 그들은 취기어린 모습으로 내무반으로 갔다.

조그만 돌을 골랐다.

똑딱집 지붕으로 날렸더니, '또르륵'하며 양철 지붕을 구른다. 샛문이 열리고 주인이 묻는다. 뭘 찾냐고. 고참들 했던대로 요구했다. 소주와 라면땅을 철조망 사이로 건낸다. 라면땅 안주로 쇠주를 들이켰다. 남은 술은 수통에 채웠다. 라면땅은 탄창에 넣었다.

교대 후 내무반에서 잠든 상호에게 속삭였다. 상호는 훈련소 동기로 자대까지 같이 온 고교동창이다. 다음다음 보초였다. '보초서로 갈 때, 내 탄띠 차고 가라.'고 일렀다. 친구는 잠결에 들었지만 내말을 귀담았다가 내 탄띠를 차고 보초를 선다. 수통이 묵직하고 탄창이 두둑해서 살핀다.

'이게 웬 떡?'

쫄병인 우리는 즐길 수 있는 음주가 아니었다. 친구도 보초를 서면서 라면땅 안주에 쇠주를 즐겼다. 남쪽 밤하늘을 보면서 두고 온 초동친구를 그렸을 것이다. 우리는 만나면 그날의 경험을 공유했다. 경험을 같이 한다는 것이 '우정'이다.

추억

칠십을 넘겼다. 그래도 둘이 만나면 그때로 돌아간다. 좋은 일도 궂은 일도 같이 했던 친구. 그는 언젠가 원통의 그 부대를 들렸다고 한다. 나도 자전거로 설악산 고개를 넘을 때 그 부대 앞을 지난다. 주변은 변했다. 그러나 그 부대는 지금도 있었다. 백담사 쪽으로 조금 진행하면 노무현 대통령이 근무했던 병기 부대가 있다. 그곳도 기웃거리면서 지난다. 그러기를 다섯 차례. 자전거로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을 넘을 때마다 기웃거리며 옛 생각에 젖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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