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콤 달걀밥
밥과 달걀 프라이. 흔히 즐기는 식단이다. 식용유를 쓰면 설거지가 귀찮아서 그간 '35초 달걀 반숙'을 즐겼다. 작은 그릇에 달걀을 풀어 전자레인지에 35초 돌리면 먹기 좋은 반숙 달걀이 완성된다. 이 경우는 팬에 기름을 두르지 않아도 되니 설거지가 간단하다.
내가 나를 대접하는 첫 아침.
그런 간단 대접은 어울리지 않는다. 백 선생 매뉴얼을 참조하여 '매콤 달걀밥'을 선택했다. 설명에는 달걀 2개를 튀기듯이 반숙으로 만들어 밥에 올리고 만능 양념에 동남아 매운 소스를 곁들인 뒤 김가루를 뿌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문제가 있다. 내게는 만능 양념도 동남아 소스도 없다. 준비 없이 덤빈 나가 너무 서둘렀나 싶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 없다.
서툰 달걀밥
식용유를 찾았다. 쉬운 반숙에는 식용유가 필요 없었기에 식용유 보관처를 모르겠다. 짐작으로 행주를 두른 짙은 녹색 병을 들쳐보니 올리브유다. 깨끗하게 세척된 팬에 불을 달구고 올리브유를 부었다. 튀기듯이 하려니 자연 양이 많다. 달걀은 세 개를 풀었다. 팬을 기울여 잘게 자른 대파와 마늘 조각을 넣고 파 기름을 만든 후에 달걀을 튀기듯이 기름에 담갔다. 서투르기는 하다만 흰자위는 갈색으로 변색되면서 기름에 튀긴 산자 조각처럼 우들투들해졌다. 노른자위는 아래만 약간 익은 설익은 반숙 달걀이 됐다.
밥을 그릇에 담고 달걀 반숙과 기름에 튀긴 대파와 마늘 조각을 올리고 김을 구겨 김고명(?)을 올렸다.
매콤한 맛이 빠졌으니 '매콤'을 빼고 '달걀밥'이라 칭했다. 손님인 내게 말했다. 서툴고 간이 없으나 정성으로 만들었으니 맛있게 드시라고. 내가 말한다. 옷차림은 격식을 차리지 못했으나 맛있게 들겠노라고.
노는 노년의 아침상은 이렇게 시작했다. 어느 이침보다 기분 좋은 아침이다. 아르헨티나와 네덜란드의 월드컵 8강전을 보느라 배경음악은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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