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애 소설 '소금'
조금 낯선 이름입니다. 소설가도 소설도. 그리고 '伏字'도.
1934년 발표된 강경애 '소금'은 1930년대 간도 이주민의 비참한 삶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식민지 시대 간도로 이주한 이주민 가족 봉염이네의 피폐한 삶과 봉염 어머니라는 여성 가장의 수난사를 통해 1930년대 간도 이주민의 실상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작품은 일제 검열에서 붓칠 '복자' 수난을 받습니다. 먹칠을 해서 독자들이 알아볼 수 없게 한 것입니다.
伏字 복원
복자된 부분은 남과 북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복원을 합니다. 북에서는 당시 상황을 고려하여 문맥 복원을 했고, 남은 '국립수사연구소'의 도움으로 과학적인 복원을 했습니다.
동국대 한만수 교수 복원 내용
“밤 산마루에서 무심히 아니 얄밉게 들었던 그들의 말이 ㅇㅇ떡오른다. '당신네들은 우리의 동무입니다! 언제나 우리와 당신네들이 합심하는데서만이 우리들의 적인 돈 많은 놈들을 대○ 할 수 있습니다!' ㅇㅇ한 어둠 속에서 어지던 이 말! 그는 가슴이 으적하였다. 소금자루를 뺏지 않던 그들 ㅇㅇ 그들이 지금 곁에 있으면 자긔를 도와 싸울 것 같다. 아니 꼭 싸워줄 것이고 ○○○ 내소금을 빼앗은 것은 돈 많은 놈이었구나!' 그는 부지중에 이렇게 고ㅇㅇㅇ 이때까지 참고 눌렀던 불평이 불길같이 솟아올랐다. 그는 벌떡 일어났다."
작가 강경애
강경애는 1906년 황해도 송화에서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나 4세에 부친이 사망합니다. 모친 따라 장연으로 옮긴 강경애는 어린 나이에 한글을 깨쳐 '도토리 소설쟁이'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1921년 평양에 있는 숭의여학교에 입학했으나, 동맹 휴학 주동자로 지목되어 퇴학을 당합니다. 이어 연인 관계였던 양주동을 따라 서울 동덕여학교에서 공부를 지속했습니다. 다시 고향 장연으로 내려가 홍풍야학교의 선생으로 일하고 지역 근우회 활동에도 참여하였으며,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의 글을 '조선일보'에 투고하기도 합니다.
1931년 '파금'을 투고하고, 이어 잡지 '혜성'에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을 연재하면서 등단하였습니다. 이후 장하일과 결혼하여 간도로 이주하여 1939년까지 살았습니다. 이곳에서 강경애는 간도 체험을 기반으로 한 '채전', '모자', '소금' 등과 여성의 삶을 정면으로 문제 삼고 있는 장편 '어머니와 딸', 계 급 문제와 여성 문제를 총체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장편 '인간문제'와 같은 수준 높은 문제작을 창작하였습니다. 그러나 병이 악화되어 귀국한 후 1944년 3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납니다.
강경애의 작품은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49년에 남편 장하일이 평양 '노동신문사'에서 '인간문제'를 단행본으로 출간하면서 알려졌고, 남한에서는 1990년대 와서야 출간됩니다. 강경애는 북한은 물론 남한과 중국 조선족 문학사에서도 높게 평가를 받는 여성작가입니다.
'사색과독서 > 교양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년 구보씨의 반나절 (13) | 2023.05.29 |
---|---|
남편, 아들에 이어 두 딸이 죽는다면, 소설 '소금' (4) | 2023.05.28 |
올바른 호칭과 지칭 (30) | 2023.05.16 |
리브로피아 전자책, 이상 소설집 (1) | 2023.05.06 |
우리는 왜 시를 읽어야 할까요? (16) | 2023.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