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소금'
저는 눈물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돈을 걸고 하는 화투놀이는 삼갑니다. 내 쩐이 줄어들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눈동자가 붉어지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그런 일이 많지 않습니다. 음악감상반 선배가 별세했는데도 눈물이 안 났습니다. 5.18 열사의 43주기를 보면서도 눈은 맹숭맹숭했습니다. 그동안 너무 흘렸나 치부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90년 전에 발표된 소설 '소금'을 보면서 눈물을 흠뻑 쏟았습니다. 도서관이라 손으로 가려가면서 흘린 눈물이 종지기 하나는 될 것 같습니다.
소설 '소금'
강경애 소설 '소금'은 1930년대 식민치하에서 겪을 수밖에 없던 궁민(窮民)들 삶이 묘사됐습니다. 간도로 건너간 봉염 어머니는 남편을 잃습니다. 중국인 지주 팡둥을 만나러 갔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옵니다. 아들 봉식이는 집을 떠납니다. 어린 봉염이를 데리고 지주 팡둥네 눈칫밥을 먹으면서 일을 거들며 살다가 팡둥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아이까지 뱁니다. 팡둥은 봉식이 공산당 활동하다가 죽었다는 핑계로 봉염네를 내칩니다. 만주국이 되면서 공산당 패거리는 모두 죽이는 판국입니다. 팡둥 사이에 생긴 아이를 떼내려 했으나 인력으로 안된 봉염네는 남의 집 헛간에서 짐승이 새끼 낳듯이 출산합니다.
생명을 보는 순간 '살아야겠다'는 집념이 생깁니다. 자녀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다 우연히 만난 이웃 용애네로부터 알음알음으로 젖어미를 하면서 삽니다. 물론 두 아이는 따로 방을 얻어 몰래 보살핍니다. 유모 노릇 하는 사이 봉염이가 죽고 이어 봉희도 열병으로 죽습니다. 게다가 유모 노릇까지 못하게 되면서 '소금' 밀수에 참여합니다. 소금이 귀한 간도는 고향의 소금값에 8배 정도 됩니다. 물론 소금 거래는 전매 사업이라 사염은 취급할 수 없습니다. 산 넘고 물 건너 소금을 지고 오다 도둑을 맞기도 하는 목숨 건 행렬 속에서 여자 몸으로 감당한 것은 모질고 질긴 생명 의지 때문입니다. 결국 소금이 관염이 아니고 사염이 들통나면서 몇 푼 벌겠다는 꿈도 깨집니다.
봉염네는 본래 조선의 아녀자로 지아비 음식 간을 싱겁게 할 수밖에 없는 경우마저 자책했던 사람입니다. 팡둥의 말대로 남편이 공산당에 의해 살해됐다고 '말 그대로' 믿었던 봉건사회 관습에 절어 살던 여자였습니다. 아들과 딸들이 죽고 젖 먹이던 명수마저 못 만나게 되면서 점차 사회 구조가 자신을 옥죈다는 사실에 눈을 뜹니다.
작가 강경애가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안 갔습니다. 마음 졸이며 볼 수밖에 없었던 90년 전 소설, '소금!'
강추합니다.
'사색과독서 > 교양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년 구보씨의 반나절 그 이후 (18) | 2023.05.30 |
---|---|
노년 구보씨의 반나절 (13) | 2023.05.29 |
[소설] 강경애의 '소금', 복자(伏字) 복원 (4) | 2023.05.27 |
올바른 호칭과 지칭 (30) | 2023.05.16 |
리브로피아 전자책, 이상 소설집 (1) | 2023.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