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전하는 얘기는 이렇습니다. 짝사랑하던 이웃 총각이 상사병으로 죽습니다. 처녀 집을 지나던 상여가 천근만근 무게가 실려 움직이질 않습니다. 어여쁜 처녀는 자신의 옷으로 상여를 덮습니다. 그랬더니 움직입니다.
그 15세 처녀가 황진이입니다. 뛰어난 용모와 출중한 재능은 숨길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전하는 바로는 죽은 총각 때문에 기녀가 됐다는데 사실은 알 수 없습니다. 전해지는 시문으로 그녀의 인품과 시적 재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황진이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님 오신 날 밤에 굽이굽이 펴리라
동짓달 기나긴 밤을 반 동강으로 싹둑 잘라서 보관합니다. 보관한 밤을 봄바람 이불로 쌓아서 녹입니다. 따스하게 온기 먹은 밤을 임이 오면 꺼내서 짧은 밤에 이어 붙이겠다는 것이네요. 길어진 밤을 님과 함께 애틋하게 보내겠다는 갸륵하고 사랑스러운 정경입니다.

아름답지 않습니까?
긴 겨울밤 12시부터 6시까지 잘라 내서 보관한다는 생각이. 게다가 따스하게 보관한다네요. 밥이 식지 않게 아랫묵에 밥그릇을 넣고 이불로 덮듯이. 봄바람에 녹이겠답니다. 짧은 여름밤 앞뒤에 세 시간씩 붙이면 오후 여섯 시부터 아침 여덟 시까지 밤이 연장되는 것이군요.
이 여인, 사랑스럽지 않습니까?
나주에 사는 백호 임제는 평안도로 부임차 가는 가는 길에 황진이를 만나러 송도에 들렸습니다. 진이 사망 소식을 듣습니다, 만나서 시문이라도 교환하려던 백호 임제는 진이 묘소에서 죽은 진이와 담소를 나눕니다. 술도 나누면서. 옛 정인들의 삶! 멋지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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