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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독서/교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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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황진이, 청산은 내 뜻이오 황진이 시조, 청산은 내 뜻이오 청산은 내 뜻이오 녹수는 님의 마음 녹수는 흘러가도 청산은 변할쏜가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며 울며 가는구려청산과 녹수가 사랑을 하는구려. 사랑이 끝나고 녹수가 청산의 품을 벗어나네요 그려. 그럴 수밖에. 녹수는 한참도 머물 수 없고, 청산은 잠시도 움직일 수 없는 운명이니. 청산과 녹수의 사랑은 운명적으로 만나면서 헤어짐을 생각할 수밖에. 가는 녹수 마음도 많이 아프오. 그 소리가 계곡을 울리며 다음 길로 가는구려. 그게 운명이라오. 청산은 다른 녹수를 만나고, 녹수는 다른 님의 품을 돌 수밖에 없다오. 바다를 거쳐 다시 비가 도어 청산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마오. 녹수도 느긋하게 돌고 돌아오리다.
[시조] 황진이, 어뎌 내 일이여 황진이 시조, 어뎌 내 일이여 황진이 시에는 정이 덕지덕지 붙었다. 뻔히 그리워할 줄 알면서 잡지 않아 가버린 님. 그리워하며 자신을 탓한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가슴을 칠 일이다. 미치도록 좋아하는데 내색 않고 보낸 모질지 못한 마음. 그가 등 돌리고 가는 모습을 보고 '가지 마!'라고 소리치지 못하고 모퉁이 돌아가는 뒷모습만 봤던 내 못난 모습을 탓한다. 어뎌 내 일이여 그리울 줄 몰랐던가 있으라 하면 임이 구태어 갔겠냐만 보내고 그리는 마음 나도 몰라하노라 젊은 날 이런 기억 하나쯤은 있지 않나? 세월 지냐 그미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그리면서. 그러나 꿈은 꿈대로 가슴에 두는 것이 좋을 듯. 진이여! 그대도 이미 떠난 정인을 그리워하지 마오. 자기 탓도 하지 마오. 뭇사람들이 다 그리 산..
[시조]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 황진이전하는 얘기는 이렇습니다. 짝사랑하던 이웃 총각이 상사병으로 죽습니다. 처녀 집을 지나던 상여가 천근만근 무게가 실려 움직이질 않습니다. 어여쁜 처녀는 자신의 옷으로 상여를 덮습니다. 그랬더니 움직입니다. 그 15세 처녀가 황진이입니다. 뛰어난 용모와 출중한 재능은 숨길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전하는 바로는 죽은 총각 때문에 기녀가 됐다는데 사실은 알 수 없습니다. 전해지는 시문으로 그녀의 인품과 시적 재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황진이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님 오신 날 밤에 굽이굽이 펴리라 동짓달 기나긴 밤을 반 동강으로 싹둑 잘라서 보관합니다. 보관한 밤을 봄바람 이불로 쌓아서 녹입니다. 따스하게 온기 먹은 ..
[시조] 서경덕, 마음이 어리니 서경덕'송도 3절'이라 했던가요. 황진이가 흠모했던 인물 서경덕(1489~1546)은 독학으로 학문에 일가견을 이룹니다. 시서에 능한 기생 황진이와 서경덕에 얽힌 사연으로 '송도'라는 수식이 붙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박연폭포'가 포함되어 3절을 이루는 것은 괴이쩍습니다. 야호비령 산줄기의 성거산과 천마산 사이를 흐르면서 박연에 머물다 고모담이라는 폭호가 생긴 박연폭포는 절경으로 뽑힐 가치가 있네요. 한반도에서 폭포 3대 절경에 들 정도로 유명한 박연폭포는 두 위대한 역사적 인물과 함께 '송도 3절'이 됐습니다. 화담 서경덕 시조, 마음이 어리니마음이 어리니 하는 일이 다 어리석다 구름 낀 깊은 산중에 어찌 님이 올까만은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님인가 하노라 고결한 학자의 속내는 타고 있습니..
[시조] 매창, 이화우(梨花雨) 흣뿌릴 제 매창, 계랑 '매창'이라는 호를 가진 기생 '계랑'은 조선 선조 때 부안현 출신 여류시인입니다. 아버지는 부안 현리 이탕종입니다.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그녀는 유희경, 허균 같은 당대의 주요 문인들과 교류가 깊었습니다. 유희경의 시 중에는 매창에게 바친 시가 10여 편이 있고, 허균의 '성소부부고'에는 매창과 시를 주고받은 이야기가 전해져 있습니다. 매창의 시는 가늘고 약한 선으로 자신의 숙명을 그대로 읊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그녀의 뛰어난 시재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매창 시조, 이화우 흣뿌릴 제이화우 흣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님도 나를 생각하시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라가락 하노매라현대어 풀이배꽃이 비 오듯 우수수 흩날리는 봄날, 손잡고 울며 헤어진 그리운 ..
[문학] 조선 후기 위항인과 여항인의 활동 위항인과 여항인 '위항인(委巷人)'이라는 용어는 조선 후기에 처음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조선 사회는 유교적 신분 질서가 매우 엄격했습니다. 중인 이하의 계급 출신은 양반의 신분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인 이하의 계급 출신 중에서 경제적인 안정과 양반들이 갖추고 있는 기본적인 소양을 함양한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양반의 신분을 얻을 수는 없었지만, 자신들의 소양과 재능을 발휘하여 문학, 음악,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을 가리켜 '위항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위항(委巷)'이라는 말은 '마을 밖에 있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위항인들은 양반들이 거주하는 마을 밖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위항인들은 신분적 제약을 받지 않고 자..
[시조] 홍랑, 묏버들 갈해 것거 홍랑과 최경창홍랑은 조선 선조대 시기에 활동한 기생으로, 문예 작품을 남긴 기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함경도 홍원현 출신이며, 황진이, 이매창과 함께 유명한 인물로 꼽힙니다. 홍랑은 기생으로서의 정조를 노래한 것으로 유명하며, 고죽 최경창과의 만남과 이야기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1573년에 최경창이 북도평사로 발령받아 함경도 홍원현으로 갔을 때, 홍원현 현감이 이를 축하하기 위해 연회를 열었고, 그 자리에서 홍랑과 최경창이 만났습니다. 그러나 홍랑은 관기였기 때문에 최경창을 따라갈 수 없었고, 첫 만남은 짧게 끝났습니다. 그 후 2년 뒤인 1575년, 최경창이 큰 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홍랑은 밤낮으로 7일 동안 길을 걸어서 서울에 도착하여 최경창을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최경창은 홍랑을..
[시조] 이현보, 어부단가 이현보이현보는 조선시대 연산군과 중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로, 시호는 효절이라고 합니다. 그는 1498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여러 벼슬을 거쳐 1504년에는 사간원정언이 되었습니다. 그는 서연관의 비행을 탄핵하여 안동으로 유배되었지만, 중종반정 이후에 복직하였습니다. 그 후, 이현보는 여러 주요 벼슬을 역임하였고, 1542년에는 지중추부사로 제수되었지만 병을 이유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전사옹으로 자처하며 평화로운 시골 생활을 즐겼습니다. 그는 특히 자신의 조카 퇴계 이황 등과 깊은 유대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문장에 능했고, 특히 자연을 노래한 시조가 많았습니다. 그의 작품 중 '어부가', '효빈가', '농악가', '농암가' 등이 그의 저서인 '농암문집..
[시조] 이개, 방안에 혔는 촛불 이개(李塏)이개(1417~1456)는 1436년 문과에 급제한 뒤, 1441년 세종에 의해 집현전 학자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또한 《명황계감》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그 후 집현전 학사로서 신숙주, 성삼문, 정인지, 김문기 등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습니다. 단종이 왕위에 오른 후, 이개는 왕자의 개인 교사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러나 단종이 세조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자, 이개는 성삼문 등 동지들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체포되어 처형당했습니다. 토정비결의 저자 토정 이지함은 그의 종증손이며, 종고손은 동인과 북인의 당수이자 세 번 의정부영의정을 지낸 이산해와 임진왜란 때 명나라군 파병을 위해 노력하다가 과로사한 이산보입니다. 이개 시조, 방 안에 켜놓은 촛불은방안에 혔는 촛불 누구와 이..
[시조] 성삼문, 절의가 성삼문 성삼문(1418-1456)은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입니다. 그는 세종대왕을 도와 집현전에서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고, 단종 복위 운동을 추진하다가 세조에 의해 죽음을 당합니다. 그는 충절과 절개가 뛰어난 인물로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절신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성삼문의 시조, 수양산 바라보며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 주려 죽을지언정 채미를 하는 것 가 아무리 풋새엇 것인들 그 뉘 땅에 낫더니 세종이 즉위하던 해(1418년)에 성삼문은 태어났습니다. 그는 세종을 도와 집현전 학사로서 훈민정음 창제에 공이 컸습니다. 세종은 말년에 세자(문종) 건강을 염려하여 세손(후일의 단종)을 부탁합니다. 문종이 재위 2년(1450~1452) 만에 세상을 뜨고 단종이 12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릅니다.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