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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독서/교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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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정철, 훈민가 1~4 훈민가훈민가(訓民歌)는 정철이 1580년에 지은 연시조로, 경민가(警民歌), 권민가(勸民歌)라고도 불립니다. 전체 16수로 이루어져 있는데, 정철이 45세에 강원도 관찰사로 있을 때 백성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지은 것입니다. 송강가사에 실려 있습니다. 4수씩 4번으로 나눠서 감상하겠습니다. 정철의 연시조, 훈민가[제1수]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이 아니다면 이 몸이 있겠는가 하늘 같은 은덕을 어떻게 다 갚을고 [제2수] 형아, 아우야 너의 살을 만져 봐라 누구에게 태어났기 모습조차 같은가 같은 젖 먹고 길러졌으니 딴 마음 먹지 마라 [제3수] 임금과 백성 사이 하늘과 땅이로되 나의 서러운 일을 다 알려하시거든 우린들 살찐 미나리 어찌 혼자 먹겠는가 [제4수] 어버이 살아 계실 때 섬길..
[시조] 퇴계 이황, 도산십이곡 중 언학(言學) 퇴계 이황이황은 조선전기 성균관 대사성, 대제학, 지경연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입니다. 1501년(연산군 7)에 태어나 1570년(선조 3)에 사망했습니다.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했으나 1545년(명종 즉위) 을사사화 이후 고향 퇴계에 은거하여 학자의 삶을 삽니다. 명유들과 토론하고 『주자대전』 등 주자학 관련서적을 주해·편찬하고 후진들을 양성하여 영남학파 및 친영남학파를 포괄한 거대한 주리파 철학을 형성합니다. 사후에 고향 사람들에 의해 '도산서원'에 모셔지고 1609년에 문묘에 배향됩니다. 도산십이곡 중 언학(言學)도산십이곡의 전6곡은 자연을 노래합니다. 후6곡은 '학문'에 대해 노래합니다. 자연과 학문을 노래하는 성리학자, 우리나라 풍류도에 가깝지 않을까요.제7곡 천운대(天雲臺) 도라드러 ..
[시조] 퇴계 이황, 도산십이곡 중 언지(言志) 퇴계 이황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조선 중기의 유학자인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이 1565년(명종 20)에 지은 12수의 연시조. 현재 이황의 친필로 제작된 육필본이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서원(陶山書院)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12수는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언지(言志)'와 '언학(言學)'입니다. '언지'를 '전6곡', '언학'은 '후6곡'이라 불립니다. 도산십이곡의 전6곡, '언지' 제1곡 이런들 엇더하며 뎌런들 엇더하료 초야우생(草野遇生)이 이러타 엇더하료 하말며 천석고황(泉石膏肓)을 고텨 므슴하료 더보기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랴 초야에 묻혀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시비를 벗어나 산들 어떠하랴 하물며 자연을 버리고는 살 수 없는 마음을 고쳐 무엇하랴 제2곡 연하(煙霞)로 집을..
[시조] 정철, 한 잔 먹세 그려 정철의 성격정철의 성격이 호방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시로 군요. 술을 권커니 잣커니 하면서 술자리가 익어집니다 그려. 그것도 무진무진 먹습니다 그려. 그런데 계산은 왜? 그냥 마시면 되지. 사람들 참! 별 짓을 다 하면서 엄청 마시는 풍경이 그려지는군요. 술 먹는 이유는? 죽으면 이런 자리는 꿈도 꿀 수 없다지 뭡니까? 상여 뒤에 울면서 따르는 이가 만 명이 되면 뭐 합니까! 시간과 공간이 없어지는데. 억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나무 등을 읊는 수준이 당대 최고 문인답게 나무에 대한 소양도 출중합니다. 역시 술자리도 격이 다르군요.정철, 한 잔 먹세 그려한 잔 먹세 그려 또 한 잔 먹세 그려 나뭇가지 꺾어 산 놓고 먹세 그려 이 몸 죽은 후에 지게 위에 거적 씌어 덮여 가나 유소보장에 만 사람이 따르며 ..
[시조] 정철, 어와 동량재를 정철문인 중에 정철만큼 복잡한 평가를 받는 인물도 드물 것입니다. 문학의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정치 행적이 복잡해서입니다. 그런 그가 남긴 시조로는 의외라는 생각이 드는 작품입니다. 정쟁이 되풀이 되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시조라니. 자신이 정쟁의 한 중심이었는데... 정철 시조, 어와 동량재를어와 동량재를 저리하여 어떠할까 헐뜯어 기운 집에 의견도 가지가지 뭇 지위 목수들은 허둥대다 말리라나랏일을 집 짓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인재들을 기둥과 들보로 빗댔습니다.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인재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납니다. 요즘 세태를 말하는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시조] 정철, 내 마음 베어내어 정철송강 정철(1536~1594)은 조선 중기 정계와 문학계에서 모두 중요 인물입니다. 정치를 떼어내고 문학만을 논한다면 따스함이 넘치는 정감 있는 인물입니다. 물론 '기리네' 하고 내세운 '님'이 '임금'이라 친다면 아부가 넘치지만, 말 그대로 사랑하는 '님'이라면 정이 철철 넘칩니다. 정철 시조, 내 마음 베어내어내 마음 베어내어 저 달을 만들어서 구만 리 먼 하늘에 반듯하게 걸어두고 고운 님 계신 곳에 비추어나 보리라사랑이 마음에 차고 차서 그 마음을 칼로 쑥 벤답니다. 그것으로 달을 만들어서 먼 하늘에 밝고 환한 달님을 만들어 마르고 닿도록 그리운 님을 비추고 노닐겠다는 얘기입니다. 하긴 낮엔 나타날 수 없으니 밤마다 등장할 수밖에 없네요. 정철은 낮보다 밤을 좋아한 것 같습니다. 하긴 그의 일생..
[시조] 조식, 두류산 양단수를 남명 조식남명 조식(1501~1572)은 퇴계 이황과 더불어 영남 성리학의 거두입니다. 이론을 강조한 퇴계학파에 비해 실천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훗날 남명학파 제자들이 의병으로 많이 활약한 것은 남명 조식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는 평생 벼슬을 멀리한 처사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정치는 송곳 같은 상소로 뭇 유생의 귀감이 됐습니다. 남명은 환갑 때 덕산의 사륜동에 산천재를 마련하고 강학에 힘씁니다. 덕산은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지리산과 덕천강을 두고 읊은 시가 '두류산 양단수를'입니다. 시조의 '두류산'은 바로 산천재에서 바라본 '지리산'입니다. 조식 시조, 두류산 양단수를두류산 양단수를 말로만 듣다가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그림자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메오..
[시조] 송순, 십년을 경영하여 송순15세기 조선시대 학자인 담양 출신 송순은 1519년 별시문과 을과에 급제하고 다양한 관직을 거쳤습니다. 중종의 시대에 김인후 등 많은 인사들이 그의 지도를 받았으며, 명종의 시대에는 '중종실록'과 '명종실록'의 찬수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사론을 편다는 죄목으로 한 때 귀양생활을 감수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는 전주부윤, 나주목사 등을 거쳐 70세의 나이에 은퇴하였고, 이후에는 전라도 담양에서 독서와 시조를 지으며 인생을 보냈습니다. 저서로는 '면앙집'과 '기촌집'이 있습니다. 송순의 시조, 십년을 경영하여 십년을 꾸려내어 초려삼간 지어내니 나 한간 달 한간 청풍 한간 나눠드니 강산은 들올 곳 없어 둘러 두고 보리라십년 동안에 초가삼간을 마련했습니다. 삼간 중 하나는 내가, 하나는 밝은 달이, 마지막..
[시조] 황진이, 청산리 벽계수야 벽계수와 명월벽계수(碧溪水)는 풀어보면 푸른 계곡 물입니다. 명월(明月)은 밝은 달입니다. 리(裏)는 '속'이니 청산 속 흐르는 물과 밝은 달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셈이네요. 아니, 명월이 여유 없이 흘러가는 벽계수에게 옆구리를 찔러보는 셈이네요. '어이, 벽계수!' '그리 서두를 필요 있나? 청산을 이리 밝히고 있는 보름달이 있는데, 좀 쉬면서 놀다 가면 안 돼?' 벽계수는 말없이 흘러만 갑니다. 황진이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렵나니 명월이 산에 그득하니 쉬어간들 어떠리계곡물이 흘러 흘러가는 곳은 바다.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할 길을 왜 그리 서둘러 가는 게냐. 확실히 황진이는 건방기가 상당합니다. 나를 두고 네가 그리 쉽게 갈 수 있나 보자..
[시조] 황진이, 내 언제 무신하여 황진이 시조황진이! 이 여인이 오늘날 태어났다면! 하고 생각을 짚어본다. 재색을 갖췄다하니 춤과 인물은 최승희 정도는 될터이다. 시적 재능으로 볼작시면 소월 정도는 되지싶다. 밀당 수준으로 보면 김혜수 정도는 무난하지 싶다. 오늘 시조는 '밀당'의 주인공 황진이지 싶다. 살갑게 대하지 않아 님은 갔다. 시간이 흐르니 별 생각이 난다. 내가 그를 속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소식 한 번 전해주지 않는단 말인가? 그녀는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소리마저 님 발걸음으로 느껴질 정도다. 시조, 내 언제 무신하여내 언제 무신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되 달 기운 삼경에도 님의 기척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파리에 어쩔바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