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망설였다.
이 포스트의 컨셉으로.
이별여행, 봄나들이 등등.
결국 쓸쓸함을 지우고 따사한 나들이로 잡았다.
각설하고,
선운사를 들어갔다한다. 백파스님과 추사 일화를 한참 떠벌린다. '오호라~. 내 시간이 안 나는 것을 알고 혼자 싸돌고 있는가보다.'고 생각했다. 5월 2일이니 선운산 봄 느끼기에는 좀 늦다 싶지만 제법이다. 이렇게 정리하다... 생각해보니 책 얘기다. 유홍준의 답사기에서 선운사 편을 읽는 것을 '선운사 들어갔다.'고 표현했다.
'자식, 귀여운 놈.'
예정된 교육 일정을 파토내고 선운사로 향했다. 아니, 선운산으로 향했다. 봄날 선운산은 내 청춘의 아름다운 기억이 있다. 입구 미당 시비로 시작했던 어느 봄 야리야리하고 따사로운 선운산 계곡과 낙조대의 아름다움이 꿈틀했다.
친구 정균의 차로 선운사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12시 넘어. 선운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을 때리고 노점이 즐비한 입구길을 접었다.
차속에서 계속 읍조리는 소리가 뮈냐 물었다. 미국가면 작은 그룹의 믿음 스터디를 할거라나. 그래, 부탁한 것이 영어 기도였다. 수우울수우을 풀리는가 했더니 툭. 어렵단다. 아니, 봄봄하는 주변 풍광이 막았을 것이다.
역시 '봄 선운'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노점상의 어눌하면서도 노련한 '이태원 상술'에 밤, 은행, 쑥떡 등을 움켜쥔 친구. 그는 쑥떡을 한웅큼 물더니 이런건 뉴욕가면 못 먹는다나. 용산서 내려왔다는 나이든 아짐은 자신의 점포 앞에 우리를 묶어두면서 두어차례 다른 손님을 받는다. 그탓에 옆에서 전을 연 마스크로 가렸지만 아름다운 중년 부인은 묻혔다.
산사 입구에서는 검표를 하는 아저씨가 우리를 세운다. 좀체 막는 일이 없는 지공대사들인데 여기는 달랐다. 70이란다. 언제 노년 나이가? 다행히 셋 모두 용띠로 통과는 됐는데, '생일은 안 지났구먼......'하며 검표원이 웃음을 날린다. 아마 비슷한 연배의 '봐줌'이리라.
싱건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보니 써니가 아는척했던 백파스님의 비가 있는 부도밭에 왔다. 호기롭게 설명하겠다며 앞장서는 써니.
기대가 된다.
백파율사 긍선(1767~1852)은 고창 무장 출신으로 12세에 선운사에 출가했다. 조선후기 수선결사로 불교중흥에 앞장섰던 화엄종의 대가였다. 이 대가의 논지에 반박을 했던 추사. 그 둘의 토론은 제자 시기까지 이어져 세간의 화제가 됐다. 논쟁은 논쟁이고 이 두 대가의 관계는 추사가 쓴 백파비가 대답해주는 듯 싶다.
봄을 간직한 선운사
초파일을 준비하는 선운사는 절답지 않게 분주하다. 대웅전은 수리중이고 여기저기가 바쁘다.
주변은 봄봄하지만 인간세에는 돈돈하는 것 같다. 여튼 돈으로 분주한 가운데에서 여유로운 봄을 찾는다. 사찰 뒷편의 춘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오백년은 됨직한 동백이 숲을 이룬다.
좀 늦긴 했어도 아직 기다리는 녀석들이 줄기와 잎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진초록 잎과 진빨강 꽃. 볼 때마다 감탄한다.
입구 부도밭에서 얘기를 나눴던 백파율사 영정을 뒤로하고 절을 떠났다.
도솔봉 오르는 길
도솔봉을 오르는 주변에는 볼거리가 많다.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이어 나타나는 600년 장사송. 곳곳에 세워진 거대돌탑. 숱한 사람들의 사연을 모아 쌓은 조그만 돌탑들. 흐르는 냇물 소리에 화답하는 새 울음을 느끼는듯 흘리는듯, 우리는 만사를 접고 휘적휘적 산길을 걷는다.
도솔암에 이르니 사연 많은 마애불이 나온다. 그의 배꼽은 수술을 했다. 그 속에 기밀사항이 있었단다. 동학혁명이 있던 갑오년 1년전 이곳 동학접주 손하중은 이 비기를 접수하러 왔다. 비기 내용은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다. 단지 부처님의 수술 자국을 보는 후배들이 이리저리 상상을 돞아볼 뿐.
용문굴에 이르렀다. 가히 용이 있다면 이 정도 되는 곳에 터를 잡지 싶다. 사방팔방으로 문을 터서 어디로든 행차가 가능하게 뚫렸다. 그리고 친구는 그 사이에 작은 용이 되어 폼을 잡는다.
용문에 비하니 싸이즈가 작긴하다.
도솔봉 가까이서 회군했다. 오후들어 서해쪽은 흐리다. 미약하나마 황사도 섞였다. 내 젊은 날의 봄은 아니다. 아쉽지만 하늘이 하는 일 누굴 원망하랴. 뒷날을 기약하고 돌아선다.
오는 길에 눈썰미 좋은 정균이 오리 두 마리를 찾았다. 뉴욕 정원에서 원앙을 키운다는 써니, 원앙새라고 우긴다.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니 우긴놈이 승자(?)다.
그런데 이번에는 미적 눈썰미가 좋은 써니가 감탄한다. '흰 갈대'라고. 아마 홍수에 씻겨 그 아픔이 저런 흔적을 냈지 싶다. 아픈만큼 성장한다고 하지 않았나?
식당 약속은 일곱시. 선운사 주차장 출발 여섯시. 정균의 운동신경이 발동걸렸다. 그의 판단은 이미 55년 전 고교 시절로 갔다. 잽싸게 차를 몰아 식당에 도착한 시각은 7시 3분.
정균이 꼬불쳐온 와인에 회 한점. 주인이 내놓은 녹찻물에 굴비 한점.
이렇게 봄나들이를 마친다.
잘 가라. 친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