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7일 금요일 아침에 가랑비
어젯밤 꿈에 저승사자를 만났다. 뭔가를 항의하려고 말을 했지만 발성이 되지 않았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손발을 흔들다가 잠을 깼다. 생각해보니 내 나이도 적은 나이가 아니라서 사후 문제도 고려 대상이 된다 싶다. 별생각 없이 사는 나에게 '경고'를 날리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서 몇 가지를 머릿속으로 헤아리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아시아문화전당
카카오톡 선물함에 남은 스박 커피도 사용해야겠다 싶어 텀블러에 아메리카노를 채워서 아시아문화전당으로 점심을 들러 갔다. 어제 송목사님에게 받은 도넛과 아침에 집에서 가져온 고구마, 요거트로 점심을 때웠다. 그때였다. 미모의 여성이 나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고 지나간다. 그녀는 옆 좌석에서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얇은 노트북으로 어떤 나이 지긋한 남자에게 설명하는 노년의 여인 쪽으로 가더니 합석한다. 가족처럼 보이는 그들을 보곤 했다. 묘령의 여인이 얼마 전에 종영됐던 '달리와 감자탕'에 출연했던 여주인공 박규영과 너무나 닮아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녀는 밤색으로 위아래를코디한 가벼운 복장이지만 어딘가 고결함이 흘렀다. 그녀는 아침 비에 젖은 철 의자를 빗물이 흘러가게끔 비스듬히 테이블에 기대는 둥, 고운 마음씀새가 드러난다. 눈길을 의식했을까? 한 번인가 눈길이 이쪽을 향한 것 같기도 했다. 내 마음을 들킨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해서 무안했다. 스박 커피를 바닥까지 빨면서 마스크로 가린 여자의 얼굴을 상기 그려봤다. 분명 아름다운 모습이다.
다시 만나는 행운
그 일행은 자리를 떴다. 주섬주섬 챙기는 물건 중에는 찐 고구마와 삶은 감자도 보였다. 그리고 그 일가는 떠났다. 노트북으로 열심히 설명하던 노년의 여인은 밤색 옷 여인의 뒤태를 가볍게 쓰다듬기도 하면서 녹음 짙은 아시아문화전당을 떠난다. 한 순간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려니 그 아름다운 여인이 급하게 다시 온다. 자신들이 앉은자리 밑을 살핀다. 그리고 내 자리 주변도 둘러본다. 물었다. 좀체 남의 일에 나서는 법이 없는 나로서는 특별한 대꾸다. '무얼 찾으시는지?' 여인은 답한다. '차키를 흘린 것 같다'라고 한다. 그러면서 이내 '차에 두고 내렸나 보다'라고 한다. 그러더니 나에게 묻는다. '여기 자주 오세요?' 그렇다고 했다. 그랬더니 전화번호를 묻는다. 마침 음악을 듣느라 테이블에 올린 폰을 내려보고, 전화 어플을 열었다. 숙달된 솜씨로 자신의 전번을 찍는다. 다시 연락하겠노라고. 무슨 짐 되는 일은 아니라고 한다.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시간이었지만, 나는 속에 있던 말을 꺼내고 말았다. 드라마 '달리와 감자탕'에 나온 여주인공과 닮아서 보곤 했다고 말했다. '고맙다'고 한 그녀는 자신의 이름 석자도 또박또박 알린다. 내 이름도 기록했다. 틀린 이름은 정정까지 하면서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게다가 자신이 아침에 삶아왔다는 고구마에 감자까지 준다. 1회용 장갑에 곱게 놓은 고구마. 그리고 자신이 건네기는 그렇다고 나에게 고르라는 껍질 벗긴 속살이 살아 숨 쉬는 감자까지.
요즘 만난 최고의 행운이었다. 초여름 팽나무와 회화나무 그늘 아래 촉촉하게 젖은 잔디 위로 비둘기 몇 쌍이 먹을거리를 찾아 고갯짓을 하면서 기웃거린다. 보슬거리는 감자 부스러기 몇 조각을 흘렸다. 부리나케 쪼아대는 비둘기 모습도 한없이 이쁘다. 고구마는 그녀가 건넨 1회용 장갑에 곱게 쌌다. 그것까지 먹기에는 점심 양이 너무 많기도 했지만 이 행운을 좀 더 잡아보겠다는 욕심도 있었다.
달리와 저승사자
KBS 2TV 수목 드라마 '달리와 감자탕'은 2021년 9월 22일부터 그해 11월 11일까지 방영됐다.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진무학(김민재 분)은 생활력 하나는 끝내주는 '가성비' 끝판왕이었다. 상대역인 달리(박규영 분)는 귀티가 차고 넘치지만 생활에는 무능력한 '가심비' 끝판왕 여자 미술관장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미술관을 맡은 달리는 운영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아버지가 아끼는 미술관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분투한다. 여기에 쌈까지 잘하는 진무학이 진심을 다해 도움을 준다. 처음에는 데면데면했던 달리도 무학의 진심에 끌려 깊게 사랑한다.
이리 진행되는 드라마 여주인공을 현실에서 만난 것 같은 기쁨이 어제저녁 저승사자 꿈 때문에 확 깬다. 저승사자가 건넨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막힌 입을 열고 말을 하려는데 가위눌렸던 기억과 뭔가를 강요하는 듯한 사자의 시선은 느껴진다.
과연 오늘 만난 그녀는 저승사자가 나에게 남긴 꿈같은 선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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