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면?
가난은 어떤 냄새일까? 영화 '기생충'에서 가난은 반지하 냄새가 났다. 기생충 영화가 워낙 특별해서, 가난이란 주제가 눈에 띄면, 옷 여기저기를 코로 스캔하는 배우 송강호가 먼저 떠오른다.

소설가 박완서의 가난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에서 가난은 어떤 냄새가 나지?
읽으면서, 냄새를 찾기 시작했다.
연탄 냄새일까? 아니면 공동 취사를 하는 설음질 냄새일까? 아니다! 박완서는 냄새 타령은 아니었다. 가난에 굴복해 버린 허영기 많은 엄마도 냄새를 피운 것은 아니다. 나를 놔두고 모두를 끌고 저 세상으로 떠난 엄마는 가난을 죽음보다 더 싫어했다. 결국 죽음으로 끝낸 엄마와 다르게, 나는 엄청난 절약으로 가난을 동반(?)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공장 직공이라 믿기 어려운 한 놈을 만난다. 멕기 공장을 다닌다는 이 놈을 데려와 동숙하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 집세 절약에 둘이 붙어 있으면 난방비까지 절약하는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놈은 말없이 사라진다. 멕기공장에도 없다. 일당까지 셈하지 않고 종적을 감춘 것이 필시 사고 난 게 틀림없다는 것이 공장 주인 판단이다.
가난 도둑질
놈이 혹시 나타나지 싶어 늘 바삐 귀가하는 내 앞에 녀석이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옆구리에는 책까지 끼고. 게다가 폐병으로 휴직한 공장 동료 도움에 아낌없이 기부했던 돈까지 가지고. 그리고 말한다. 지 애비는 부자라고. 아빠가 일부러 '가난 체험'을 보낸 거라고. 사실을 안 나는 악다구리를 쓰면서 놈을 패고 내쫓았다. 그런 후로 자기 주위는 모든 것이 다르게 비쳤다. 이리저리 흩어진 물건들은 정상이 아니게 비치고, 느끼지 못했던 가난의 냄새까지 맡게 된 것이다. 놈의 잘난 '가난 체험' 탓에 내 가난까지 도둑맞은 것이다.
후기
박완서의 스토리텔링은 책에서 눈을 돌릴 수 있는 틈을 안 준다. 한달음에 읽고, 왜? 가난을 도둑맞았다고 했는지를 느꼈다. 놈은 다시 나타나서, 지 애비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지 체험이라고 말하지 않고 나와의 얘기를 넌지시 건넸던 모양이다. 그랬더니 관심을 보이면서 데려오라고 했다나. 맥락으로 보면 '신데렐라' 탄생을 예고하는 듯하는데, 더 진행하지 않고 싹둑 무 자르듯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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