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계 박인로
조선 후기에, 선전관, 만호, 용양위부호군 등을 역임한 문신, 박인로(1561~1642).
그의 82세의 생애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반생(前半生)이 임진왜란에 종군한 무인으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졌다고 한다면, 후반생(後半生)은 독서와 수행으로 초연한 선비요, 문인 가객(歌客)으로서의 면모가 지배적입니다.
1601년(선조 34) 이덕형이 도체찰사(都體察使)가 되어 영천에 이르렀을 때, 두 사람이 처음 대면하여 지은 시조가 '조홍시가(早紅柿歌)'입니다.
![](https://blog.kakaocdn.net/dn/xXPDj/btsp1jBJ08R/MnCaEsVz1avEGAJK4I7bv0/img.png)
[제1수]
반중 조홍감이 곱게도 보이구나
유자는 아니지만 품어 가고 싶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으니 그것을 설워하노라
[제2수]
왕상의 잉어 잡고 맹종의 죽순 꺾어
검던 머리 희도록 노래자 옷을 입고
일생에 양지성효(養志誠孝) 증자같이 하겠노라
[제3수]
만균의 쇠를 늘려 길게 끈을 꼬아
구만리장천에 떨어지는 해를 잡아
북당의 학발쌍친(鶴髮雙親) 더디 늙게 하리라
[제4수]
봉황이 모여 산데 까마귀 들어오니
백옥이 쌓인 곳에 돌 하나 같다마는
두어라 봉황도 새 중 하나 뫼셔놓은들 어떠하리
중국 삼국시대 육적(陸績)이라는 가난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원술이라는 사람이 귤을 먹으라고 주었는데 귤을 받아 든 육적이 그 자리에서 먹지 않고 품에 간직합니다. 원술이 물었더니 어머니께 드리고자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원술은 육적의 효심에 탄복하였다고 합니다.
박인로는 육적의 귤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을 뜨신 부모님! 그 생각이 이어집니다.
춘추전국시대 노(魯)나라에 효심이 지극한 노래자(老萊子)가 있었습니다. 노래자가 70세의 백발노인이 되었을 때도 그의 부모는 그의 효성 덕분으로 건강하였습니다. 노래자는 행여나 부모님이 자신이 늙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늘 알록달록한 때때옷을 입고 어린아이처럼 재롱을 피우기도 하였습니다.
노사는 떨어지는 해까지 잡아두려 합니다. 위험한 생각입니다만 시적 상상에는 끝이 없습니다. 1 균이 서른 근이니, 만균이면 삼십만 근입니다. 300,000 곱하기 600이면 180,000,000그램. 18,000kg. 18톤의 쇠를 녹이면 가는 해도 잡지 싶네요. 저는 시적 상상을 무자비한 산술로 깨고 말았습니다.
![](https://blog.kakaocdn.net/dn/em1yif/btsqZvAJcPJ/OWvjt2KKYASHKfo16fjN1K/img.jpg)
'사색과독서 > 교양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조] 신흠, 서까래가 기나 짧으나 (23) | 2023.08.17 |
---|---|
[시조] 신흠, 산촌에 눈이 오니 (13) | 2023.08.16 |
[시조] 이신의, 단가육장 2 (6) | 2023.08.14 |
[시조] 이신의, 단가육장 1 (11) | 2023.08.13 |
[시조] 신계영, 전원사시가 3 (6) | 2023.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