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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독서/교양도서

[시조] 윤선도 시조, 만흥(漫興)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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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1587~1671)

고산 윤선도는 1642년 경, 해남 현산면 금쇄동, 수정동, 문소동 등에 연못과 정자 등을 조영해 원림을 조성하고 후학을 양성하고 저술 활동을 합니다. 이때 탄생한 시조가 '만흥'입니다.
 
말년에는 남해 바다를 항해하다가 보길도를 지나면서 그 섬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곳에 머물러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 짓고 낙서재라는 정자를 세워 산과 바다를 즐기면서 시를 벗 삼아 생활하였습니다. 그때 탄생한 시조가 유명한 '어부사시사'입니다. 그는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타고난 DNA가 있었던 셈이네요.
 

윤선도 시조, 만흥(漫興) 4~6수

[제4수]
누군가 삼정승보다 낫다 하더만 만승이 이만 하랴
이제야 생각하니 소부와 허유가 영리했었도다
아마도 자연과 노니는 즐거움이 비길 데가 없어라
 
[제5수]
내 천성이 게으르더니 하늘이 알았을까
세상만사를 한 가지 일도 맡기지 않아
단 하나 다툴 상대 없는 강산을 지키라 하시도다
 
[제6수]
강산이 좋다 한들 내 분수로 누었겠냐
임금 은혜를 이제 더욱 알겠도다
아무리 갚고자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어라

고산 윤선도는 생애 네 번이나 유배를 당합니다. 천자도 부럽지 않다고 뻐기지만 결국 짝사랑을 고백합니다. 좋다고 좋다고 하디가도 임금님 은혜를 어찌 갚냐고...

왕조 시대의 한계를 넘기는 어렵군요.

달리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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