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관
조선후기 안민영과 함께 '가곡원류'를 편찬한 가객으로 안민영보다 13살 손위입니다. 흥선대원군의 총애를 받고, 운애라는 칭호를 받습니다. 당시의 풍류객들이 모인 승평계(昇平契)의 중심인물이었습니다. 시조 13수가 '가곡원류'에 전합니다.
박효관 시조, 님 그린 상사몽이
요즘으로 치면 유행가 수준이라 할까요? 님을 그리워하는 수준이 약간 치기 어립니다. 귀뚜라미로 변신하여 님의 침실로 기어 들어갑니다. 보아하니 님은 편히 잠들었습니다. 그 모습을 이쁘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잊고' 잠들었다고 심술(?)을 부립니다. 가을밤 귀뚜라미 우는 애잔한 소리로 님을 깨우겠다고 합니다. 하긴 가객답게 잠든 님을 위한 세레나데(?)를 부르겠다는군요.
겨울밤을 베어내서 이불에 덥혀 님이 오는 밤에 이어 붙이겠다는 욕심까지는 않겠습니다. 님이 편히 자면 곱게 소리 죽여 잠을 깨지 않으려 하는 유비의 삼고초려 미덕을 고려하는 것이 아닙니다. 푸닥거리(?)라도 해서 깊은 잠을 깨겠다는 심뽀입니다. 자신의 욕심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발산한다고 할까요.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어 보입니다. 귀뚜라미에서 다시 사람으로 변해 덥석 안아버리는 수준까지 가지 않았으니까요.
시대가 흐르면서 시조의 묘사도 점점 노골화되는군요. 하긴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설시조에는 육감적인 표현이 많습니다. 조선의 유교 도덕의 자기 검열 기준이 점차 희미해지는 과정입니다.
님 그린 상사몽이 귀뚜라미 넋이 되어
가을날 깊은 밤에 님의 방에 들렀다가
날 잊고 깊이 든 잠을 깨워 볼까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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