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미상 시조, 나모도 바히돌도 업슨
나무도 바위돌도 없는 산에 매에게 쫓기는 까투리 마음과
대천 바다 한가운데 일천석 실은 배가 노도 잃고 닻도 잃고 용총줄도 끊어지고 돛대도 꺾이고 키도 빠지고, 바람 불어 물결치고 안개 뒤섞여 잦아진 날에, 갈 길은 천리만리 남았는데, 사면은 어둑하고 천지는 적막하고 사나운 파도가 치는데, 수적(水賊)을 만난 도사공 마음과
엊그제 님 여읜 내 마음이야 어디에다 비하리오
님을 여읜 여인입니다. 그 적막하고 비통한 마음을 초장에서는 '매에 쫓기는 까투리 마음'에 비합니다. 중장에서는 '바다에 난파된 배 한 척'에 비합니다. 많이 나가기는 했지만 오만가지 울화에 마구 읊어대다가 결국 바다 도저까지 만납니다.
꿈자리가 사납다고 할까요?
도대체 이런 꼴은 상상이 어렵습니다. 바람이 불어 천석을 싣고 가던 배가 노도 닻도 없고, 용총줄도 끊어지고 돛도 키도 어장 났습니다. 용총줄이란 배의 돛을 올리거나 내리는 밧줄입니다. 키는 배의 방향을 조정하는 배 운전대입니다. 배의 모든 것이 등장했습니다. 바람에 안개에 갈 길까지 천리만리 남았습니다. 험한 바다에 도적이라니? 그 도적도 대단합니다. 바람 속을 휘젓는 도적이니... 여하튼 묘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내세워도 자신의 심정을 담을 수가 없는 울화!
그러나 그 여인은 이겨낼 것입니다. 이렇게 밖으로 쏟아낼 수 있다면 현실이 괴로워도 버틸 수 있습니다. 묘사하지 못할 고통이 참기 어렵습니다. 물론 여인의 울화는 초장, 중장으로도 마음에 차지 않지만, 어느 정도 카타르시스는 된 셈입니다.
현실을 맞보고 아득바득 살아갈 것을 기대합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우리 속담이 그 마음을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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