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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독서/교양도서

[시조] 님이 오마 하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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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 오마 하거늘

님이 오마 하거늘 저녁밥을 일찍 먹고

중문 나서 대문 나가 문지방 위에 앉아 손을 이마에 대고 임 오는가 보려 건너편 산 바라보니, 거무희뜩한 것이 서있기에, 저거야 님이로구나 하고 버선 벗어 품에 품고, 신 벗어 손에 쥐고, 허둥대며 진곳 마른곳 가리지 않고, 우당탕탕 건너가서 정 넘치는 말 하려고 곁눈으로 흘깃 보니, 작년 칠월 사흗날 껍질 벗긴 주추리 삼대가 살뜨리도 속였구나.

모쳐라 밤이기 망정이지, 낮이라면 우세살 뻔 했구나

해학적 사설시조

해학적이고 과장이 많은 사설시조입니다. 님을 기다리다 지쳐 중문을 거쳐 대문을 나서 문지방에 걸터앉아 기다립니다. 날은 어두워지고 님은 오지 않은데 건너편 산을 보니 멀대 같은 님 오는 것이 보입니다. 버선도 벗고 신발도 벗고 달려갑니다. 아마 맞지 않는 짚신이라 빨리 달리는데 장애가 된 성싶습니다. 우리 어렸을 때도 '큰배미 달리기'를 하면 신을 벗어 양손에 들고 뛰었거든요. 철벅거리는 큰 고무신은 달리는데 방해가 되니까요. 고무신보다 못한 짚신은 아마 맨발이 훨씬 좋지 싶네요.

허겁지겁 달려가서 정이 뚝뚝 떨어지는 말을 건네려는 여인네 모습이 재밌습니다. 솔직한 그녀도 님을 바로 보지 못하고 곁눈으로 흘깃 보는데, 웬걸 삼대를 세워둔 거였네요. 모시 적삼을 하려고 삼밭에 삼을 심었거든요. 옷감 만들면서 껍질은 벗겨 이용하고 남은 대를 묶어 쓰러지지 않도록 서로 엮어 세워놓은 것이 사람처럼 보였네요.

이 여인 말하는 것을 보소.

밤이라 다행이지, 낮이었으면 우세살 일이었다고 하는 겁니다. 밤이라 헷갈렸지, 낮이면 그렇게까지 헛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화자는 님 그리는 심정을 낮에서 시작해서 저녁까지 끌어갑니다. 조선 후기가 되면 이리 속내를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밝혔네요.

달리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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