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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독서/교양도서

[오유권 단편] 농지상한선(農地上限線), 문학사상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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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상한선(農地上限線), 문학사상 1982년


1950년 봄, 농지개혁법이 공포됐다. 농지상한제가 실시되고 소작농이 없어지게 됐다고 남도의 금부리 주민들은 좋아한다. 1967년 농지법이 다시 개정됐다. 이 과정에서 금부리 윤첨지 주변에서 일어난 변화를 소설에서 그리고 있다. 금부리 텃골양반은 농지 개혁에 의해 소작에서 자작으로 변경됨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축하했다. 특히 반농노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반겼다.

반면에, 윤첨지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53 정보의 땅을 3 정보만 남기고 넘길 수밖에 없었으니. 그러나 윤첨지는 또 하나의 기회로 삼았다. 땅을 넘기는 대신 받은 '지가증권'과 그동안 지주로서 모아놓은 돈을 운수업에 투자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이자놀이를 시작했다. 마을금고를 맡은 윤첨지는 고리채로 다시 부를 잡았다. 그리고 67년 농지법 개정으로 다시 땅을 샀다.

결국 옛 지주가 형태가 바뀐 새 지주가 됐다. 보유 의무 기간이 지난 소농들은 목돈 마련을 위해 윤첨지에게 땅을 넘기고, 다시 그 땅을 얻어 농사를 짓는 웃픈 현실이 된다. 텃골양반도 마찬가지 고민에 빠진다. 목돈이 필요해 땅을 팔아야 할 형편인데, 그 뒤가 걱정이다. 금부리 다른 주민들과는 달리, 고기 서근을 사서 식구들과 저녁을 한다.

'돈을 받고 술을 먹기는 먹어도 걱정이 태산 같네. 또 묶일 생각을 하면'

'또 묶이다니라우?'

'논을 팔아버렸으니 또 소작이라도 붙여야 쓸 것 아닌가. 농촌에서 농사 안 짓고 살 것 같는가.'

'그럼 또 소작료를 물어야 안 쓰겄소.'

'소작료뿐인가, 이 사람아. 또 상전한테 매어 살아야 써.'

텃골 두 부부의 대화다.

위 텃골양반 생각이 60년대 시골 사람들 생각이다. 세월이 흐르고, 농사만이 살길이 아니다고 느낀 사람들은 그 길로 떴다. 그들 중 일부는 도시에서 번 돈으로 다시 시골로 돌아온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집터에 대궐 같은 집으로 개축하고, 텃골양반처럼 농촌을 벗어나지 못해 지지리도 궁색한 노후를 비웃는 웃픈 사실이 올지를 작가 오유권은 모르고 세상을 떴다.

1999년에.

그가 작고한지 24년이 흘렀다. 만약 생존해서 글을 쓴다면, 아마 '농촌부고장'을 쓰지 않을까? 싶다.


달리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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