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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여행

뉴요커와 떠나는 봄마중, 2일 목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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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밤안개, 아니 물안개.

무궁화호로 가는 목포길 이른 새벽.

영산강변에 물안개가 피어 오른다. 물 위로 퍼진 안개 너머로 점점이 산이 이어진다. 동양화 한폭이 차창 너머로 쉼없이 변한다.

몽탄역을 지난다.

몽탄!
아는 척 하려는데 친구의 인터셉트.
어제 학습이 빛을 발한다.

이러는 사이 임성리를 지나 목포역에 도착했다.

유달산 오르는 길

'목포'하면 생각나는 노래, '목포의 눈물'이 있다. 우리는 이 노래를 부르며 노적봉을 향했다. 가을걷이를 마치고 벼를 갈무리한 노적. 바위 모습이 흡사 '어리통'을 닮아 '노적봉'이 됐다. 얽힌 사연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노적봉 아래편 '여자목'.

유달산 노적봉


여자목에 얽힌 얘기는 이렇다.

임진왜란 때 바위에 이엉을 덮어 군량미로 위장하는데 한 아낙이 소매가 급했다. 바위 아래 나무 그늘에서 일을 보는데 정탐나온 왜군이 그 모습에 홀려 정보 수집을 못했다는 썰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라.

나무 생김새가 엉덩이를 까고 소피를 보는 여인네 궁뎅이, 아니 거시기처럼 생기지 않았는가? 이 모습이 이런 썰을 만들었지 싶다.

여튼 국난 극복에 큰 기여(?)를 했다 싶은 나무, 기특하다. 그런데 이 나무 이름이 특이하다. '폭나무', '팽나무속 폭나무'. 우리나라 남부 지방에서 자라며 산팽나무 잎보다 훨씬 길어 분명하게 구별된다고 한다.

우리 조상님들 썰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죽었다. 영혼이 유달산 최고봉인 일등바위에서 심판을 받는다. 이등바위에서 대기한다. 그리고 세마리 학이나 고하도 용에 실려 떠난다. 일등바위, 이등바위, 삼학도, 고하도가 모두 등장해서 조상님들 썰에 참여한다. 이런 DNA덕분에 오늘의 '기생충'이 나왔나 보다.

썰에 등장한 고하도는 용처럼 길쭉하게 목포 앞을 가려준다. 거기를 가는 중이다. 조상님들이 만든 스토리텔링에 요즘 기술이 입혀졌다. 세 마리 학 대신 가느다란 철선에 매달려 용 등줄기로 간다.

오르는 길에 '연리지'가 있다. '사랑'이다. 오직 연모했으면 둘이 이렇게 붙었겠냐. 이건 봐줘야 한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 연리지는 열차칸에서도 에스컬레이터로 올라가면서도 붙어지낸다. 희망적이지 않은가?

사랑의 연리지


고하도가 길게 몸을 뻗대고 있다. 용머리는 목포대교 아래를 통과하면 하늘로 솟구칠 것이다. 솟구치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용처럼 길게 늘어진 고하도


일등바위 오르는 길에 반기는 동백도 가지가지. 앵무 주둥이처럼 빨간 봉우리를 내미는 놈이 있는가 하면, 별당 울타리 사이로 빼꼼하게 내민 춘정에 겨운 핑크빛 처녀도 있다.

붉은 동백과 핑크빛 동백

 

목포하면 이난영이지 않은가!


그의 노래 '목포의 눈물' 노래비가 있다. 가사에 나오는 '삼백년 원한풍'은 본래는 '삼백년 원한 품은'이란다. 임진왜란 끝나고 삼백여년이 지났는데 왜놈들이 다시 한반도를 먹었으니 그 한을 품었다는 가사. 그대로 발표를 못한 원한이 서린 노래란다.

이난영 노래비


일등바위를 오르는 친구는 폼을 잡는다. 일등바위에서 심판받는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경으로 일등바위를 꼭 넣어 달란다.

일등바위 배경으로 폼잡은 선홍

고하도


고하도에 도착한 우리는 친구가 준비한 치즈떡구이와 아메리카노를 즐기고 고하도 등줄기를 향해 오른다. 이름하야 '150세 힐링 건강 계단'

유치원을 지나 초등학교를 거쳐 힘차게 백세를 향해 오른다. 허벅지에 전해지는 긴장을 느끼면서 전진이다.

150세 힐링계단

150세를 찍고 용 등줄기를 탄다. 친구는 '동심'에 젖는다. 아니 '노심'에 젖는다. '못간다고 전하라'면서 노래를 능청스럽게 읊는다. 아이스크림 마이크까지 들이대는 친구. 망령이 들었나?

용비늘을 밟으면서 용머리를 향하는 뉴요커



고하도 아래 나무데크는 바다 위로 설치됐다. 바다 위를 걷는다. 도중에 '이스터섬 거대석상'을 만났다. 이 녀석이 언제 여기까지 왔나 싶다.

이스터섬 거대석상 닮은 고하도 둘레길 바위

정체 모를 벤치에 남녀가 앉아 있다. 이게 뭐꼬? 이리저리 굴리고 돌리고 맞춰도 조각이 맞춰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알려준다. '낭만'이란다. 그리고 다른곳은 '항구'란다.

'낭만항구'였다.

'낭만항구 목포' 벤치

오후

우리는 친구의 친구가 알려준대로 오후 일정을 시작했다. 근대역사관1관, 그리고 2관. 본래 일정 중에 아래 빨간 표식한 곳만 찾았다. 다른 곳도 들릴만한 장소이기는 하나 코로나 사태로 문이 닫혔거나 제한을 받고 있었다. 그보다는 허용된 시간이 많지 않았다.

친구가 추천한 오후 일정

일제 지배를 받았던 기억들을 모아놓은 구 일본영사관 건물이다. 일제의 만행을 찾아가는 미제 선홍. 그 걸음을 슬프게하는 소녀상. 소녀도 마스크를 썼다.

근대역사관1관

제국주의 힘으로 세운 건물은 요즘 자본으로 세운 건물보다 실하다. 제국의 힘으로 끌어온 자재와 무상 또는 저임으로 갖다쓴 노동의 흔적이다.

고종의 개항과 민초들의 삶

조선을 이은 허울 좋은 '대한제국'의 황졔 '고종'의 개항 도시 '목포'. 거기에 다른 나라는 없었다. 곡창 나주평야 산출물을 빼돌릴 일본의 욕심만이 있었다. 치자가 어지른 뒤치닥거리는 민초의 몫이다. 의병이며 독립군이며 얼마나 서러운 삶인가?

아무개에게 고하노라. 제발 전쟁을 쉽게 말하지 마라. 눈 핑계, 허리 핑계대고 집안 배경으로 군대 피한 놈들이 '전쟁'을 쉽게 말한다. 전쟁이 나면 죽어나는 것은 민초다. 삼국지를 봐도 그렇고 초한지를 봐도 그렇다. 영웅놀음에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서럽게 사라지는가?

이 나라에 치자들이여!

이제는 우리 민초들 눈에 쓴물이 베이게 하지 마라. 우리 민초들에게 총이나 칼을 들게 하지 마라. 너희들 메이저의 이념놀이, 영웅놀이에 마이너의 민초들은 밟히면서 스러진다. 너희들이 싸지른 똥을 민초들은 열심히 닦고 치웠던 것이 동학혁명이고 기미년 만세운동이었다.

'국민들이여 안심하라' 해놓고 대전으로 부산으로 피한 여우같은 지도자. 서울 시민들 건너는 것은 아예 생각도 없었다. 저만 피하면 됐다. 그렇게 한강다리는 무너졌다.

선조는 평양, 의주로 피하는 사이에 순신은 13척의 배로 이 고하도에서 전열을 다듬었다. 그 판옥선 13척은 격자로 쌓아 '고하도 전망대'를 만들었다.

목포 근대역사관에서

뒷풀이

근대역사관에서 내려온 우리.

'영란식당'으로 가지 않았다. 그 앞에 있는 30년 전통 '포도원횟집'으로 갔다. 70대 주인장의 넉넉한 칼질에 입이 호강한다. 촉촉하게 짙어오는 봄날 석양 낙지탕탕이와 민어회로 뒷풀이를 했다.

민어회
영란식당 앞 포도원횟집

코롬방제과 새우바게트

코롬방제과로 향한다. 우리의 마지막은 '새우바게트빵'이다. 제과점에 줄선 사랑들은 '마늘바게트', '새우바게트'를 주섬주섬 챙겨 나선다.

기다리는 식구들의 즐거운 저녁을 위하여.

나는 준비했다. 이삭의 아침을 위하여 '새우바게트'를. 기대하시라. 이삭 아침 9시를. 뱃속을 조금 남겨놓고.

코스

나주역 → 목포역 → 유달산 노적봉 → 여인목 → 일등바위 → 유달산 케이블카 승차 → 고하도 150세 힐링건강계단 → 고하도 전망대 → 해상데크 걷기 → 고하도 케이블카 탑승 → 근대역사관1관(구 일본영사관) → 근대역사관2관(구 동양척식주식회사) → 포도원횟집(민어회와 낙지탕탕이) → 코롬방제과(새우바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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