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욱 시조, 율리유곡
[제1수]
도연명 죽은 후에 또 연명이 낫단말이
밤마을(栗里) 옛 이름이 맞추어 같을시고
돌아와 전원을 지키는 일 그와 내가 다르랴
[제2수]
공명도 잊었노라 부귀도 잊었노라
세상에 번거로움 다 주어 잊었노라
내 몸을 나마저 잊으니 남이 아니 잊으랴
[제3수]
뒷집에서 술쌀 꾸니 거친 보리 말도 안 차
준 보리 마구 찧어 술 빚어 괴어 내니
여러 날 주렸던 입이니 다나 쓰나 어떠리
[제4수]
강산 한아한 풍경 다 주어 맡아 있어
나 혼자 임자 되어 뉘라서 다툴쏘냐
남이야 심술궂다 여긴 들 나눠볼 줄 있으랴
시조, 율리유곡(栗里遺曲)
'율리'는 '밤마을'입니다. 이게 하필 도연명이 귀거래(歸去來)한 마을과 같습니다. 귀거래 한 도연명의 삶과 같다고 호기롭게 선언합니다. 공명, 부귀, 그리고 번거로운 삶 모두 잊었노라고. 그리고 내 몸을 나마저 잊었노라고 합니다.
술을 빚을 쌀을 꿨는데 쌀이 아닌 보리가 왔습니다. 그것도 정량이 아닌 한 말(斗)도 안 됩니다. 내용물도 속이고 양마저 부족합니다. 자연에 돌아온 화자는 궂은 내색 않고 술을 빚습니다. 이렇게 빚어진 술, 다나 쓰나 상관없이 즐긴다는군요. 사실 술이 달면 어떻고 쓰면 어떠합니까. 요즘 사람들 쓴 커피도 좋다고 마시는데. 물론 화자도 벼슬살이할 때는 그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쓰니, 다니 하면서 투정 깨나 부렸을 겁니다.
술 한 잔 걸치고 둘러보니 온 천하가 다 내겁니다. 산도 개울도 흘러가는 구름까지 모두 내 것인데 누구와 다투겠느냐는 호기를 부립니다. 세상 아름다운 풍광을 다른 사람과 나눌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공명과 부귀를 쫒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욕심이 꽉 차서 이런 경관의 아름다움을 느끼지도 못할 거란 얘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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