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구, 병산육곡(제1수~제3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방숙(方叔), 호는 병곡(屛谷).
이현일의 문인으로, 일찍이 과거를 단념하고 유학의 전통을 지키며 학문 연구와 후진 교육에 힘썼습니다. 권구는 자신의 고향 안동 족적동에서 사창을 열어 흉년 때 빈민들을 도왔으며, 향약을 통해 고을의 미풍양속을 일으켰습니다.
1728년, 이인좌의 난 때문에 영남에 파견된 안무사 박사수에 의해 서울로 끌려갔지만, 권구의 인품을 인정받아 영조에 의해 석방되었습니다.
권구는 경학, 예설, 성리학을 깊게 연구했고, 이황의 '이기호발설'을 지지했습니다.
또한, 천문, 역수, 역학, 사기 등의 분야에서도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 '경의취정록', '독역쇄의', '기형주해', '여사휘찬의의' 등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그 외에도 과거의 명훈을 한글로 번역한 '내정편'이 있으며, '병곡집' 10권 5책이 전합니다.
권구 시조, 병산육곡(1~3)
[제1수]
부귀라 구치 말고 빈천이라 염치 마라
인생 백 년에 한가할사 이내 마음이니
백구야 날지 마라 너와 더불어 잊으리라
[제2수]
천심 절벽 아래 한 줄기 장강이 흘러간다
백구로 벗을 삼아 어부의 생애로 늙어 가니
두어라 세상 소식을 나는 몰라하노라
[제3수]
보리밥 파 생채를 양 맞춰 먹은 후에
집안을 다시 쓸고 북창 아래 누웠으니
눈앞에 뜬구름이 오락가락하노라
병산(屛山) 주변의 어촌을 노래합니다. 부귀도 빈천도 별 것 아니다. 인생을 느긋하게 살아가는 시인에게는 산천과 하늘을 나는 새들이 친구입니다. 갈매기에게 날지 말라 합니다. 자기와 노닥거리며 세월을 잊고 살자 합니다. 갈매기에게 날지 말고 같이 놀자는 부탁은 너무 나갔습니다. 하여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시인의 유유자적함이 느껴집니다.
병풍처럼 둘러처진 절벽 아래 긴 강이 흐릅니다. 안동 병산을 이르는 것 같습니다. 화순 적벽 정도를 생각하면 이해가 됩니다. 세상을 멀리 둔 시인에게는 모든 것이 커 보이고 재밌어 보입니다. 백구와 벗이 됐다고 합니다. 날지 말라고 부탁했던 백구가 시인의 친구가 됐네요. 시의 세계에서 '상상'은 자유입니다.
백구와 벗을 삼고 병산을 둘러보는 시인은 보리밥에 소박한 반찬으로 식사를 맞췄습니다. 보아하니 초가로 만든 조그만 자신의 서재에 누워 하늘을 봅니다. 뜬 구름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봅니다. 아마 시인의 모재(茅齋)는 북쪽으로 난 창이 큰 것 같습니다. 자연이 방까지 스며드는 모습입니다. 아니면, 북에 있는 임을 그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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