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방아 도는 마을, 현대문학 1965년
태실이네 집 옆에 기수 이모 기계방아가 있다. 본래는 물레방아였는데 혼자가 된 기수 이모가 전답을 팔아 기계방아를 들였다. 기계로 날밤 새며 근동 마을까지 방아 찧으러 왔다. 기수 이모는 돈을 모아 고리채를 놓는다. 기계화에 앞서고 마을금고까지 맡았다.
태실네 할아버지는 기계방아에 불만이 많다. 우선 집과 텃밭에 온통 방앗간 먼지가 수북하다. 게다가 며느리가 포목 장사를 하겠다고 기수 이모에게 돈을 빌려 장사를 시작한지 두 달이 되면서 소식도 없이 돌아오지 않는다. 태실네 할아버지는 본래 백 마지기 농사를 짓던 시골 부자였다. 사랑에서 시조를 읊고 봄가을에는 인근 절로 풍류를 돌았던 가세였다. 큰아들이 일찍 죽고 태실 애비 덕수가 좌익을 하는 통에 살림이 거덜났다. 태실네 할아버지는 요즘말로 '친환경주의자'다. 환경을 파괴하고 방아를 기계화해서 마을 인심이 나빠졌다고 판단했다고, 틈만 있으면 기계방아를 탓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날밤새서 통통거리는 방아소리도 문제려니와 방앗간 먼지가 보통일이 아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미세먼지' 경보라도 울려야 할 여건이다.
한편, 기수 이모는 태실 어매에게 빌려준 돈 3만 원으로 애를 탄다. 이자라도 지불하라고 덕수에게 재촉한다. 이자 지불할 능력이 못된 덕수는 무임노동으로 방앗간 일로 갚곤 한다. 이 모든 것이 태실 할아버지에게는 불만이다. 기수 이모 때문에 며느리가 집을 나갔다고 생각하는 처지라 기수 이모에게 굽실거리는 아들 모습이 불만이다.
방앗간에 일이 터졌다. 기술자가 기계에 팔이 감겨 손이 잘렸다. 일손이 부족한 기수 이모는 덕수에게 일을 부탁한다. 밤새 일을 마친 덕수는 기수 이모네에 밥과 술을 한다. 그리고 기수 이모와 합방한다.
이튿날 아침 태실네 할아버지가 쫓아왔다.
'네 여편네 왔다.'
'섬에 가서 미역장사하고 왔단다.'
소설가 오유권은 마지막에 이런 반전을 잘 쓴다. '월광'에서는 며느리와 양서방이 떠나자 달빛 맞으며 아들이 나타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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