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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독서/교양도서

노년 구보의 개천절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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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 구보는 개천절도 어김없이 도서관을 찾는다. 휴일이기에 대부분의 도서관은 휴관이다. 전일도서관은 예외다. 1년에 딱 3일만 쉬는 전국 유일의 도서관일 것이다. 휴관일은 새해가 시작되는 '1월 1일', '설날', '추석',  3일이다. 이번 6일 연휴 중에도 추석 하루만 쉬고 계속 문을 열었다. '도박'을 즐기는 노년 구보에게는 참으로 다행이다. 도박을 하지 않고 6일을 빈둥거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도박'이란 노년 구보가 퇴직하면서 세운 3가지 중에 하나로 '도서관에 박혀' 지낸다는 생활 수칙을 줄여 '도박'이라 한다. 칠십을 넘기고도 퇴직 후 정한 세 약속을 어김없이 지키고 있으니 용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한다.

세 가지 약속

노년 구보의 퇴직 즈음이었다. 그때 이런 글을 봤다. 노년을 지혜롭게 보내는 세 기지 기준이었다.

위 기준을 노년 구보의 삶에 접목한 것이 '답사', '도서관', '요가와 침뜸'이었다. '적극적 인생 참여'는 '답사'로, '높은 수준의 정신 신체 유지'는 '도서관 이용'으로, 그리고 '질병 피해 가기'는 '요가와 침뜸'으로 적용했다.

위 세 가지는 그대로 적용되지는 못했다. 답사는 '음악'으로 바뀌었다. '요가와 침뜸'은 '자전거 타기'로 변경됐다. 유일하게 변경되지 않고 지킨 것은 '도서관'이다. 노년 구보가 마을 사업을 하던 4년 동안에도 틈나면 나주와 영산포의 도서관을 이용했다. 마을 사업을 끝낸 뒤에는 도서관 생활은 일상이 됐다. 노년 구보는 십여 년 세월의 기록을 블로그로 리뷰하면서 새삼 십여 년 전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방송고 제자들 얘기도 반추해 보고, 광고 제자 '헌'이와 '규'도 생각해 본다. 이제는 어엿한 중년이 됐을 그들의 모습을 그려보는 노년 구보는 오늘 하루를 블로그 글로 써보려고 작정한다.

도심 어싱

노년 구보는 어제부터 도심에서 어싱을 즐길 곳을 찾았다. 어제는 풍암호수와 산동교를 찾았으나 마땅치 않았다. 오늘은 문화전당에서 장소 물색을 하기로 작정했다. 평소 같으면 극락교로 해서 광주천을 타는 자전거 주행길이었으나, 오늘은 바로 문화전당으로 직행했다. 상상마당에 도착한 시각은 7시 50분. 역시 맨땅은 없다. 우레탄 아니면 나무로 피복을 했다. 상상마당 잔디를 걷자니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어 들어갈 수 없는 노년 구보는 상상마당 제일 위쪽에 있는 어린이놀이터까지 올라갔다. 놀이터의 모든 시설은 탄력 있는 우레탄 아니면 인조잔디였다. 다행히 경관용 나무 주변만 흙이 있다. 노년 구보는 신을 벗고 맨발로 흙을 딛고 책을 읽는다. 서늘한 기운이 발바닥에 전해진다. 흐리긴 해도 상상마당에서 치켜보는 하늘은 정겹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일체가 되는 순간이다. '천 지 인' 삼재가 하나가 된다고 느끼면서, 대견해하는 노년 구보. 그는 한 시간 정도를 상상마당에서 보내다가 ACC 지하에 조성된 아시아문화광장으로 이동했다. 인조잔디만 생각했었는데, 웬걸 팽나무 주변은 바로 '흙'이다. 숨통을 열기 위해 조성된 나무 주변은 털머위가 덮인 땅이었다. 문화광장에는 사람들 휴식을 위해 배치한 의자가 있어 더욱 좋았다. 맨발의 노년 구보는 기쁜 나머지 전화로 친구 균을 불러냈다. 친구는 찐 밤과 볶은 아몬드를 한 줌 가지고 왔다. 10시에 도서관이 열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 문화전당에서 어싱을 즐기면서 책을 봤다.

문화전당 팽나무 아래

전일 도서관

도서관은 직원 혼자 컴퓨터 전원을 넣고 있었다. 노년 구보는 자주 사용하는 '인터넷 4' 컴퓨터 예약을 한다. 어제 작업 중이 파일이 있어 남이 사용하면 곤란한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사실 그런 걱정되는 일도 있어 가장 먼저 예약한 것이다. 컴퓨터를 켜고 시작한 일은 내일 강의할 '전자책 만들기' 원고 작성이다. 전자책 편집기 '시길'을 열고 여러 방법을 적용했다. 노년 구보는 4년 전부터 시작된 '디지털배움터'  강사로 일주에 18시간 정도 강의를 한다. 디지털배움터란 정보사회가 되면서 정보활용 격차를 줄이기 위한 국가 차원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다. 2020년 코로나가 시작될 때는 바이러스 전염을 대비해서 다중 교육이 아닌 개인 교습으로 시작됐다. 엔데믹 선언 이후 마스크 없는 다중 교육이 가능하게 됐다.

추신

이 글은 한국방송통신대학 국문학과 과제로 작성했었다. 평가가 끝나 블로그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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