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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음악

사연 담긴 가곡, 비목(碑木)의 작사자 한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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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목의 작사자, 한명희

그는 1964년 학군사관 임관 후 7사단 백암산 수색대 소대장으로 백암산 OP에서 복무했다. 그 뒤 동양방송에서 라디오 방송을 했는데, 1968년 어느날 통금 때문에 귀가하지 못하고 숙직실에서 뜬눈으로 보낸다. 그는 4년전 군시절을 돌이켜보다 산모퉁이에 조성된 6.25 전쟁(정확히는 백암산 전투) 당시 숨져간 무명 용사들의 돌무덤과 철모가 올려진 비목(碑木)이 문득 떠올랐고, 그들을 기리고자 이 시를 썼다 한다.

작사자 한명희의 군복무 시절
고성현의 비목

비목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닯어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아, 비목이여

시의 '초연'은 '超然'이 아니고 '초연(硝煙)'으로 화약 연기를 말한다. 전쟁 상흔이 아직 남아있던 시절 시를 쓴 한명희는 화약 연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전방 계곡이면 햇볕이 들기 어렵겠지만, 동료들은 빈약하지만 그 가운데서 양지를 찾아 돌무덤을 만들었을게다. 그곳에 세운 조그만 나무비. 그 비는 머얼리 두고온 고향을 그리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이끼가 더덕더덕 낀 상태로 애처럽게 돌무덤을 지키고 있다. 나무비의 사연을 한소위는 몸으로 느꼈던 것이다.

부대원에 붙잡힌 암노루를 찾는 숫노루의 울음은 달빛을 타고 흘러온다. 밤하늘의 환한 달빛이 산허리를 돌아 헤어진 숫컷의 애달픈 사연을 배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목은 그 달빛마저 탈 수 없다. 누워있는 한서린 혼백을 두고 갈 수 없는 것이다. 홀로 서있다 지쳐 쓰러질 듯 버티고 있는 비목. 어릴적 친구들과의 추억을 씹고 씹으며 서러움을 달래는 일 밖에는 없다.

비목의 서러운 사연은 알알이 돌이 된다. 그리고 어렵게 찾아온 후배에 의해 시로 승화됐다. 시인 한명희는 이렇게 전장터에 잊힐 뻔한 슬픈 죽음을 아름다운 시로 담아낸다.

다시 그날이 왔다. 어떤 이유에서든 있어서는 안되는 동족끼리의 전쟁. 그런 비극만은 기필코 막아야 하리라. 슬픈 사연을 안은 비목이 다시는 깊은 계곡에 세워지는 일.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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