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 임제, 물곡(勿哭)

백호 임제(林悌)

백호 선생(1549~1587)은 어려서부터 지나치게 자유분방해 스승이 없었습니다. 1570년(선조 3) 22세 되던 겨울날 충청도를 거쳐 서울로 가는 길에 쓴 시가 성운에게 전해진 것이 계기가 되어 성운을 스승으로 모셨다고 합니다.

젊어서는 얽매임을 싫어하여 기녀와 술자리를 즐기며 살았습니다. 1571년(선조 4) 23세에 어머니를 여의었고 이때에 잠시 술을 끊고 글공부에 뜻을 두었습니다.

28세에 속리산에서 성운을 하직하고, 생원·진사에 합격했습니다. 이듬해에 알성시에 급제한 뒤 흥양현감(興陽縣監)·서북도 병마평사(西北道兵馬評事)·관서 도사(關西都事)·예조정랑(禮曹正郞)을 거쳐 홍문관지제교(弘文館知製敎)를 지냈습니다. 그러나 성격이 호방하고 얽매임을 싫어해 벼슬길에 대한 마음이 차차 없어졌으며 관리들이 서로를 비방 질시하며 편을 가르는 현실에 깊은 환멸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는 관직에 뜻을 잃은 이후에 이리저리 유람하다 고향인 회진리에서 1587년(선조 20) 39세로 세상을 떠납니다. 죽기 전 여러 아들에게 '천하의 여러 나라가 제왕을 일컫지 않은 나라가 없었다. 오직 우리나라만은 끝내 제왕을 일컫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못난 나라에 태어나서 죽는 것이 무엇이 아깝겠느냐! 너희들은 조금도 슬퍼할 것이 없느니라'라고 한 뒤에 '내가 죽거든 곡을 하지 마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짧지만 굵은 삶입니다.

나주 회진의 '물곡비'

백호 임제의 삶과 작품

벼슬에 환멸을 느껴 유람을 시작했으며 가는 곳마다 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그 가운데 널리 알려진 일화는 서북도 병마평사로 임명되어 임지로 부임하는 길에 황진이의 무덤을 찾아가 시조 한 수를 짓고 제사 지냈던 일입니다. 이러한 일화로 인해 사람들은 그를 평가하길 기이한 인물이라고 했으며 또 한편에서는 법도에 어긋난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상반된 평가와는 상관없이 그의 글은 높이 평가됩니다.

「수성지(愁城誌)」·「화사(花史)」·「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등 3편의 한문소설을 남겼으며 문집으로는 『임백호집(林白湖集)』 4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