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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여행

[답사] 기억을 믿을 수 없다, 나주 금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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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없는 기억

나주로 접으면서 '답전보'의 주인공 려말선초 인물 조선 개국 공신 삼봉 정도전 흔적을 찾기로 했다. 바로 백룡산 기슭의 누구도 찾기 힘든 곳에 있는 '정도전 유배지', 내게는 또렷하게 남은 추억의 장소다. 10년 전 나주인들과 함께 단편 영화를 찍었던 장소로.

정도전 유배지를 배경으로

관리는 엉망이다. 찾는 이가 없기도 하겠지만 행정 편의주의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지붕은 짝퉁 짚으로 올렸고 마루는 먼지투성이다. 대울타리는 관리를 편하게 하려고 그랬는지 철심을 군데군데 심었다. 다행히 벌초는 돼있었다.

백룡산 들머리의 백동마을 수구맥이(정선생 높이 평가)를 촬영하고 급하게 좌회전으로 방향을 바꿨다. '여기 벚꽃이 좋아. 백룡저수지 때문에 일주일 늦게 피어' 정선생 얘기다.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답사객답다. 어느 지역 벚꽃 개화 시기까지 알 정도이니. 내가 차량 대가리를 정반대로 꺾은 것은 '추억의 장소'를 찾기 위함이었다. 영화를 찍었던 정감 넘치는 마을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백룡제로 오르면 바로 있었다는 예측과 달랐다. 한참을 달려도 그럴법한 마을은 없고 축사와 허접한 농가만이 나온다. 개울이 흐르고 큰 정자나무를 거느린 정자는 없다. 손으로 코를 풀고 엄지로 문질렀던 옛스런 돌담은 더더욱 없다.

'사라진 마을'이라며 너스레를 떨고 모면했지만, 내 기억을 믿을 수 없게 됐다. '추억 속의 기억'은 한적한 백룡제를 지나면 나타나는 따뜻한 옛 모습을 간직한 마을이 나오고 길을 타고 오를수록 고적했던 풍경이었다. '추억으로만 간직할 걸' 하면서 옛 애인의 늙어버린 속살을 본 것처럼 추뤠한 기분으로 '영모정'으로 향했다. 백호 임제는 평양으로 가는 부임 길에 세상을 떠난 개성 황진희 묘를 찾아 죽은 이와 대화를 나눈 걸출한 인물이다. 나주 회진은 영산강이 돌아가는 앙암바위 건너편에 있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삼국시대부터 토성이 있어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지역이다.

회진의 영모정은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과 건너편 산을 담은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이다. 정선생의 관심은 영모정이 아니라 '물곡사(勿哭辭)'였다. '물곡(勿哭)'은 '울지 마라'는 얘기다. 백호가 남긴 유언이다.

임제가 남긴 물곡사(勿哭辭)

그의 기개가 느껴지는 '물곡사' 답게 다듬지  않은 돌에 굵게 글자를 팠다. 사방팔방이 다 '황제'라 칭하는데 우리 조선은 굽히고 사느냐며 자손들에게 '내가 죽어도 곡하지 마라'라고 했다는 얘기다.

나주 금안리

쌍계정을 찾는 우리는 헛길로 들어섰다. 금안리 정도는 내비게이션 도움 없이 찾을 수 있다는 판단이 오만이었다. 웬걸, 이슬촌 입구까지 왔으니 한참 넘은 것이다. 눈치를 먼저 챈 정선생이 돌자 한다. 돌아서 가는데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좁았던 길이 4차선으로 크게 뚫려 크게 느꼈던 느티나무는 상대적으로 작게 보이고, 길 옆을 지켰던 비각은 안 보인다.

백동마을에서의 '사라진 마을' 화제가 다시 올랐다.

쌍계정도 옛날처럼 당당하게 보이지 않는다. 내가 컸나 싶은데, 다시 보니 쌍계정 안의 기물을 보고 수긍이 갔다. 선풍기 등 '문명(?)'이 끼어든 것이다. 게다가 양쪽으로 흐른다는 개울(정자 이름에 雙溪가 들어간 것은 양쪽에 흐르는 개울에서 왔다고 함)도 눈에 잘 뵈지 않는다. 쌍계정 기억을 고스란히 살리는 것은 두 그루의 푸조나무다.

푸조나무 뒤로 보이는 쌍계정
쌍계정 뒤 푸조니무

동네 어르신께 물었다. '변화가 많다고...', '아니'란다. 동네에서 사시는 분에게는 변화가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다. '월정서원은 어디?' 물었다. '조금 위'라고 답한다.

또 빚어진 '잘못되 기억'이다. 내 기억에는 서원은 마을 입구로 입력되어 있었다. 주민 얘기는 산 쪽으로 더 들어간다는 얘기다.

그렇다!

내 어설픈 기억은 조작된 기억이었다. 책에서 대충 본 내용과 금안리 '경렬사'를 잘못 연결 지어 기억했던 것이다. 금안리 주변에는 서원이 3곳이 있다. 월정서원은 박순을, 설재서원은 정가신을 그리고 경현서원은 김굉필을 모시고 있다. 좁은 지역에 서원이 셋씩이나 있는 곳도 이곳이 기록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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