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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여행

[답사] 추억을 호출하는 답사, 함평 자산서원(紫山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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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생과의 답사는 주로 옛 추억부터 시작된다. 오늘은 장선생 추억이 화제에 올랐다. 8년 손 위인 장선생은 미술실을 찾았다, 나와 허선생 사이에 자리를 잡고 데생을 시작했다. 미술 입문은 나보다 늦은 셈이다. 정선생 지도를 받았으니 정선생과 우리는 '사제간'이고, 나와 장선생 사이는 '동문간'이다. 그런 장선생은 지금까지 붓을 놓지 않았으니 베테랑이 됐을 것이다. 내 퇴직이 13년이 됐으니, 장선생은 얼추 20년 가까이 됐지 싶다. 그 추억이 우리 답사의 실마리를 풀었다. '노숙' 정도 되는 인물이지. 내 평이다. 삼국지에서 주유가 공명을 죽이려고 할 때 그것을 말린 '노숙'을 생각나게 한다는 얘기였다.

정선생은 그림 그리기를 쉬었다가 다시 시작한 지 몇 해 됐으니 장선생 뒤에 서야 되겠다는 얘기로 마무리 됐다. 그런저런 실없는 얘기를 하다 보니 고막천을 지나고 엄다까지 왔다.

자산 서원(紫山書院)


엄다의 '자산서원'을 찾았다. 길이 새로 생기면 헛 길로 접어드는 일이 많다. 오늘은 다행히 길을 허투루 돌지 않고 잘 찾아냈다.

1616년(광해군 8) 지방유림의 공의로 1589년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희생당한 정개청(鄭介淸)에 대한 신원(伸寃) 운동이 일어나면서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사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던 서원이 함평 엄다의 '자산서원'이다.

1657년(효종 8)에 서인계의 집권으로 인하여 훼철되었다가 허목(許穆)·윤선도(尹善道) 등의 상소로 1677년(숙종 3)에 복원되었으며, 1678년에 ‘자산(紫山)’이라고 사액되었으나 1680년에 경신환국(경신대출척)으로 서인이 정권을 잡게 되면서 훼철되었다가, 나두하(羅斗夏)·김덕원(金德遠) 등 유생의 상소로 1689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그 뒤 이만성(李晩成)의 상소에 의하여 1702년 또다시 훼철되었다. 그 후 1752년(영조 28)에 제동사(濟洞祠)라는 이름으로 중건되었고, 1762년 훼철되었으며, 1789년 다시 복설되었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42년 유림 및 후손들에 의하여 유허단향비(遺墟壇享碑)가 세워졌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을 빼도 네 번이나 정치 세력의 변동에 의해 철폐되는 험한 꼴을 당했으니 기록적이다. 정여립 사건에 고초를 당하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죽고, 신원이 되어 서원이 세워졌다. 그리고 훼철됐다가 복원되기를 반복하는 자산서원의 주인공 정개청! 그는 남달리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곤재 정개청


중종 24년(1529) 나주 금성산 아래 대곡동에서 봉산 훈도 정세웅과 어머니 금성 나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정세웅은 훈도였지만 집안은 매우 가난했다.

그러나 학문을 좋아해 화담 서경덕에게서도 배운 바가 있었고, 학문에 심취해 결국 금강산의 한 절로 들어가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 당시 젊은이들이 당연시했던 과거는 멀리하고, 성리학만 공부한 게 아니라 역사, 천문지리, 의학, 복서, 산수, 병법, 가무 등도 익혀서 학문에 깊이를 더했다.

이런 그가 선조 22년(1589) 정여립 사건에 연루되어 엄청난 고초를 겪는다. 결국 함경도 경원 아산보로 유배되고 고문 후유증으로 1590년 사망한다. 당시 사건 담당관은 가사문학으로 유명한 송강 정철이다. 정철은 이 지역 이발과의 악연으로 한 집안을 박살 냈고, 그와 가까운 정개청과 그의 제자들까지 아작을 냈다. 요즘 어떤 사건을 보는 듯하다.

함평 엄다의 '자산서원'


서원 주변은 추석을 맞아 벌초객이 많았다. 물론 서원 벌초객은 아니었다. 주변 묘소를 관리하는 집안사람들이다. 요즘은 돈 날리고 벌초 위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집안사람들이 모여 벌초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물론 모두 노년들이다.

서원 입구 안내

서원으로 들어서니 왼편에 강당이 보인다. 잘 꾸며진 학당은 아니지만 단출한 모습이 오히려 곤재의 모습답다. 정선생은 몸 움직이는 것도 어려운데 사당까지 오른다. 게으른 나는 강당 마루에 걸터서 여기저기 둘러봤다. 왜 '자산(紫山)'이라 했는지를 찾느라고.

자산서원 강당

아무리 둘러봐도 자줏빛 흔적은 없다. 대신 강당 앞에 일부러 심은 꽃사과가 '나 봐!' 하듯 눈길을 끈다. '자줏빛'이다.

서원 한 가운데 자주빛 꽃사과

억지로 '자산(紫山)' 숙제를 풀고 일어섰더니 정선생이 온다. 유물관 뒤로 '유허단향비'가 보인다.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 하늘이다. 유허비 올라가는 길은 탐탁지 않다.

오르는 것은 포기했다.

유물관과 유허단향비

이렇게 시작된 9월 9일 답사는 고막천 석교를 거쳐 나주 금안리로 향했다.

우물마루 형식의 돌다리인 보물 '고막천 석교'

700여 년 전에 세워진 다리가 지금까지 원래 위치에 그대로 남은 우리 조상님들  지혜가 얽힌 귀중한 다리다. 고막천은 나주와 함평을 가르는 하천이니 다리 저편은 나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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