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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여행

성실한 녀석 '남주'의 밤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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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라는 녀석

가끔은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나는 침대에서 편히 잠들었는데, 이 녀석은 밤새워 일을 한다. '강리도 모사 프로젝트'에 따라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기 전에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걸었다. 강리도 원본을 잘게 나누어 클립을 만드는 일이다.

가을 모기를 피하느라 침대에 모기장까지 두르고 눕는 나. 그 사이에도 계속 일을 하는 책상 위 '남주'. 남주는 내 컴퓨터 이름이다. 사실은 내 책상 위 '띵똥' 거리면서 일을 하는 컴의 본래 주인은 절친 '남주'다. 친구 이름 따라 컴 이름도 'NAMJU'라 지었다. 화면을 바꿔가며 일을 해내는 남주, 대견하면서도 짠하다.

밤새 274개의 클립을 만든 남주

그러나 내가 남주에게 매긴 평가는 '미'. 남주는 눈 못 붙이고 열심히 일했으나 몇 개의 클립에 오류가 생겼다. 좋은 평가를 주기 어렵게 됐다. 사실은 코딩을 잘 못한 내 평가인데, 남주가 덤터기를 쓴 거다. 평가야 여하튼 남주는 이어 주어진 작업에 전념한다. 인간이라면 벌써 '팽개칠 일'을 군소리 없이 해낸다.

컴퓨터와 나

남주가 잘하는 일은 '단순 반복'.

사실은 나도 '단순 반복'에는 이력이 있다. 1994년이렸다. 내게 주어진 미션은 책 복사였다. '남도 기행'이라는 CD를 제작하는데 문화재 도록을 복사하는 일이 내게 맡겨졌기 때문이다. 문화재 도판을 열고 스캐너로 각 페이지를 복사했다.

단순 반복은 계속됐다. 책 펴고 스캐너에 넣고. 버튼 누르고 또 스캔하고... 그런데 어느 순간 일에 몰두되면서 잡념을 떨친 나를 발견했다. 내가 '남주'와 닮은 점이 바로 그거다. 나도 머리 굴리는 게 체질에 맞지 않다. 손발을 굴려 사는 게 편하다. 몸은 피곤하지만 맘은 편하다는 얘기. 단순한 일을 반복하다 보면 내게 평안이 찾아온다.

지금도 단순한 페달질을 한다.

자전거 페달을 밟고 영산강 길을 달리고 시내 자전거길을 돌다 보면, 몸은 피곤하지만 머리는 맑아진다.

남주 저 녀석도 그럴 것이다, 생각하며 위안을 한다. 네 노고로 1402년 조상들이 남긴 강리도가 여러 이웃들에게 즐거움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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