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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여행

흑자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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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와 흑자

회계에서 사용하는 용어다.

결산서에 통상 흑자(黑字)를 쓰다가 마이너스가 발생하면 적자(赤字)로 쓴다. 친구가 내 글 '적자생존'을 보고 보내온 우스개 답이다. '복숭아 학당' 수준의 농담에 정신이 번쩍한다. 내 인생을 복식부기로 정리하면 적자일까? 흑자일까?

만으로 70년을 넘기면서 '잉여'를 생각하게 된다. 자식 낳고, 그 자식이 자식 낳으면 '자연 법칙' 상 가야 옳지 싶다. 어떤 개체는 자손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바치는 종도 있다 들었다.


우리집 내 자리

시골 우리집 마당을 쓸다 60년 전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는 대빗자루로 빗살을 만들면서 마당을 쓰셨다. 할아버지 생년이 1909년이니 당시 53세. 나는 그 할아버지를 기억한다.

큰 일을 치를 때는 잔치상에 '홍어'가 빠지면 안된다. 아버지는 영산포장에서 '홍어 절반'을 사 오셨다. 약주를 드신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발꿈치를 들고 검지를 입술에 대시며 '쉿' 표시를 하셨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나이 차이는 19년.

증조할아버지는 사랑방에서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들으며 주무셨다. 빛바랜 트랜지스터 아래에는 라디오보다 더 큰 뭉툭한 배터리가 묶여 있었다. 삼베옷을 즐겨 입던 증조할아버지는 등에 긴 담뱃대를 끼고 산책을 다니셨다.

우리집이다.

그 자리를 칠십을 넘긴 내가 마당을 쓸고 있다. 1875년 산넘어 초동에서 이곳으로 이사온 '오대조 할아버지'는 사랑채 문 앞에 은행나무를 심었다. 그 나무는 우리집 역사를 말한다. 그 아래 배롱나무가 있다. 그 옆 빈 공간을 짚었다. 내가 영원히 쉴 공간으로.

147년 동안 살아온 우리집이다.

나는 북향으로 누워서 아들딸들이, 손주들이, 그 손주의 손주들이 와서 노는 모습을 본다. 어떤 녀석은 마당을 쓸고 있다. 어떤 녀석은 농구공을 날린다. 어떤 녀석은 사랑하는 짝과 즐겁게 담소를 나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미소 짓는다. 문창살을 이쁘게 빛내는 밤에는 나도 쉴 것이다.

내가 영원히 살 우리집이다.

그리보니 적자가 아니다. 내 자리를 마련했으니 흑자다. 조상님들이 남긴 우리집이 영원한 내 집이 됐으니 '흑자'다.

우리집 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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