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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여행

광주에서 떠나는 답사, 내목마을 짐대와 내도리 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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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대 답사


오늘이 세 번째다. 정선생  답사에 기사로 나선 것이. 정읍 산외 내목마을을 치고 출발이다. 차는 고속도로를 가지 않고 국도를 따라간다. 내비가 일부러 그렇게 인도하는 것처럼.

고속국도는 맛이 없다. 특히 문화유산답사길에는 옛길이 딱이다.

'점과 점을 잇는 격이지.'

정선생 얘기다. 고속도로는 과정이 없다는 얘기다. 속도를 중시하다 보니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다. 실제 볼만한 경관도 없다. 그런데 오늘 답사길은 주변이 풍요롭다. 넝쿨장미가 반기고 작약이 인사한다. 꽃양귀비가 섹시미를 보이고 로즈메리가 도열하여 인사한다. 누구 집인지 대문에 올린 장미는 10시 햇살을 받아 영롱한 붉은색을 뿜으면서 차를 멈추게 한다. 그런 시간을 시간 반 가진 후에 내목마을에 도착했다.

달리가 그린 답사 중인 '덤앤더머'

내목마을 짐대

내목마을은 정읍 산외면 목욕리에 있다. 이곳 짐대 세우기는 500여 년 전부터 매년 음력 2월 초하루에 지내는 마을 행사다. 설화에 따른 내목마을 주민들이 짐대세우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마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던 화재를 면하기 위해서다. 짐대를 세워야 한다는 어느 노스님의 말씀으로 시작이 되었단다. 그 후 수백 년간 이어져 오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화재를 예방하는 기원이 풍속으로 자리 잡았다.

옛날 짐대 재료는 용트림하는 모양을 형상으로 하기에 구부러지고 밑동이 굵은 소나무를 이용해 매년 1개씩을 세웠다. 요즘엔 가늘고 긴 나무를 1년마다 교체하고 있단다.

정읍 산외 목욕리

일곡동에서 출발해 50km 정도 이동해 온 '길'만큼이나 내목마을 '짐대'도 멋이 있었다.

내목마을 짐대

정선생은 '솟대'라 히지 않고 '짐대'라고 한다. '진대'에서 변했다고. 내목마을 짐대는 '오리'지만 다음 목적지인 내도리 짐대는 '까마귀'라고 강조한다. 짐대 촬영만 마치고 바로 출발이다. 무주 내도리 '산의실마을 짐대'를 향해.

무주 내도리 짐대

정읍 산외에서 무주 내도리까지는 먼 길이었다. 물론 고속도로는 타지 않았지만 고속국도 못지않은 자동차전용도로 역시 오전 작은 길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맛이 뚝 떨어진다. 점심은 12시에 맞춰 길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집에서 국밥으로 해결했다. 모내기 중에 점심을 해결하러 온 농부들이 많았다.

진안을 거쳐 무주로 들어가고 심지어 충청북도 영동까지 갔다가 다시 무주로 접는 참 희한한 길을 경험했다. 무주군 무주읍 내도리에 속한 산의마을은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의 경계가 되는 3개 도의 접경 지역에 있다.

충남, 충북, 전북 3개도 경계에 있는 내도리

그리고 둥글게 휘감아 나가는 물줄기 양쪽에 앞섬(전도)과 뒷섬(후도) 등이 있으며, 이 두 마을 뒤쪽에 '산의실마을'이 있다. '산의'라 붙여진 연유는 정확히 알 수 없단다. 그러나 산의실마을은 입지가 겹겹이 산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붙여진 것으로 여겨진다고. 즉 산속 깊숙이 자리 잡은 이 마을은 전북 최상단에 있는 마을이다.

내도로 산의실마을

이곳 짐대는 '까마귀'라는데 내 눈에는 '기러기'처럼 보였다. 매년 정월 보름에 짐대제를 모신다고 한다.

산의실마을 짐대

짐대에는 말라서 실오라기처럼 살이 벗겨진 명태 하나가 짐대 위를 애처로이 올려다보고 있다. 나에게도 기회를 달라는 것처럼.

짐대에 묶인 마른 명태

이곳이 충청남도 금산, 충청북도 영동이 가까워서인지 과수나무 종류도 다양했다. 포도, 호도, 사과, 복숭아 등이 있고 인삼 재배도 많다.

3개도의 경계인 무주 내도리

정선생은 여기서도 촬영을 마치자 바로  출발이다. 앞 차가 서성거리길래 한 마디 했다.

'우리처럼 골 빈 사람이 또 있나?'라고.

정선생 안색이 변한다. 농이 심했다 싶어 얼른 화제를 바꿨다. 정선생의 답사는 우스개로 넘길 일이 아니었다. 그는 숨어 있는 짐대를 찾아 정성을 다해 숨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괜한 헛소리를 해서 정선생 심경을 사납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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