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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여행

순창, 충신리 벅수와 남계리 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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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에서 내려오는 길

무주 내도리 산의실마을 짐대를 보고 내려오는 길이다. 180km나 되는 먼 길을 가는 길이니 마음에 여유가 없다. 내비가 쫒는 대로 고속도로를 타고 그저 차 사이를 피하거나 내주면서 달리는 것 밖에는 없다. 농담도 거덜이 나서 정선생 근황을 물으면서 운전을 했다. 집도했던 의사에게 3개월에 한 번씩 인천까지 다녀온다고 한다.

그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터널 입구에서 날벌레 하나가 창에 부딪쳤다. 앞 유리에 철벅하고 갈긴 게 시야를 가린다. 브러시를 돌리는데 워셔액이 없다. 함양을 거쳐 지리산으로 오는 길이라 지리산휴게소에 들렀다. 이름만 지리산이지 눈 맛이 없는 맛없는 맹탕 휴게소다. 워셔액만 급히 조달하고 길을 재촉했다. 광주까지 줄곧 몰 생각이었는데 순창 가까이 이르자 정선생이 순창을 들렸으면 한다. 먼 답사길에 짐대만 두 곳을 보고 끝낸다는 것이 아쉬웠던 차라, 바로 동의하고 순창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순창 충신리 돌벅수

본래는 충신리에 있던 것을 2004년 이곳 순창문화회관으로 옮겼다. 남계리 돌벅수도 함께. 제 자리를 잃은 충신리 벅수는 문화회관을 꾸미는 다른 구조물과 더불어 조연급으로 떨어졌다. 충신리 벅수는 1979년 1월 26일 남계리 벅수와 같이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됐었다.

순창 충신리 돌벅수

문화재청 소개글


순창 충신리 석장승은 거대한 사각의 자연석 한 면을 장승 모습으로 다듬었다. 머리는 왼쪽으로 경사지도록 깎여 있고, 다른 장승과는 달리 눈이 작게 조각되어 있다. 세모난 콧날은 끝이 뭉툭하게 잘려 있는데, 이는 장승의 코가 아들을 낳는데 효험이 있다는 민간신앙에 따라 아들 낳기를 원하는 마을 아낙들이 떼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마와 양 볼에 혹이 불거져 나왔는데, 이마에 새겨진 혹은 불상의 눈썹사이에 있는 백호(白毫)를 연상시킨다. 웃는듯한 입 사이로 내민 혀의 모습이 소박하고 친근감을 느끼게 해 준다. 보통 석장승에는 남장승과 여장승을 나타내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충신리 장승에는 아무런 내용이 없다. 충신리 석장승은 애교스러운 생김새와는 달리 남장승으로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이 장승은 마을을 수호하고 부정한 것을 막기 위한 주민들의 염원이 깃들어 있는 민속신앙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순창 남계리 돌벅수

바로 뒤로 돌면 남계리에서 같은 시기에 옮겨온 국가민속문화재 '순창남계리석장승'이 있다.

순창 남계리 돌벅수

문화재청의 공식 명칭인 장승이라 표기하지 않고 '벅수'라고 쓴 것은 정선생의 각별한 정성 때문이다. 이 분야에 식견이 짧은 나로서는 명칭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 없다. 정선생이 부르는 명칭을 따를 수밖에.

문화재청 소개글


문화재청 소개글에는 '장승으로 표기됐다. 그대로 옮겨본다.

순창읍 남계리에 있었던 석장승으로, 원래는 한 쌍으로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남계리 석장승은 커 다란 자연석을 앞부분만 조각하였다. 석장승은 전체적으로 살찌고 무거운 모습이며 옆으로 찢어진 가는 눈, 가늘고 손상된 코에 작은 입과 장난스럽게 혀를 조금 내민 모습을 하고 있다. 이마와 양볼에 조각된 둥근 점은 연지 곤지를 찍은 모습을 연상케 하여 여장승으로도 보인다. 제주도의 돌하르방처럼 표현된 양손은 손가락까지 뚜렷하다. 보통 장승이 얼굴 부분만 표현한 것과는 달리 손가락 등을 조각해서 사실적으로 나타낸 것이 특이하다. 남계리 석장승은 정확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지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토속적이고 민중적인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는 민속문화재이다.

두 벅수를 찾느라 상당한 길을 걸었던 정선생은 돌아오는 길을 힘들어했다. 나는 차를 가지고 정선생 쉬는 곳으로 와서 승차시켰다.

참, 세월 많이 흘렀다. 순창을 정선생과 같이 왔을 때가 2004년이었다. 그때 두 벅수를 옮긴 사실을 모르고 본래 있던 자리를 갔다가 문화회관으로 돌아와서 두 벅수를 찾았던 것이다. 20년이 지난 오늘 정선생 뒷모습은 많이도 변했다. 두 벅수 모습은 그대로인데.

아니, 더 깨끗해졌는데...

'때를 벗겨 깨끗해졌네.'

정선생 얘기다. 정선생의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애정은 이렇게 깊었다. 내 눈에는 예나 지금이나 같게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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