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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여행

[답사] 홍천 삼현리 나무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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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3일 강원도 홍천에 다녀와서 집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10시경이었다. 기록의 의미가 있어 간단한 답사 보고서는 작성했었다. 친구와 같이 장장 15시간에 걸친 답사였다. 고속도로를 달렸던 시간이 무려 12시간. 막상 홍천에 도착해서 답사지에 머무른 시간은 두 시간이 안된다.
 

홍천 삼현리 나무 장승

도착한 삼현리에서 장승이나 솟대를 찾기는 어려웠다. 시골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다. 도로공사가 있는지 대형 덤프트럭은 오가지만 사람은 없다. 결국 오랜 답사 경륜으로 찾을 수밖에. 친구는 있을 법한 지역을 헤맨다. 있을 법한 장소에 흐드러지게 핀 작약이 반기기는 하지만, 장승 모습은 없다.

삼현리의 작약밭

포기하려는 찰나, 어떤 농가(농가라고 하기에는 귀티가 나는 집)에서 기계톱을 손질하는 주민이 보인다. 물어볼 양으로 기웃거리면서 '선생님'이라 불러도 대답이 없다. 톱 손질하는 소리에 묻혀 목소리 전달이 어렵다.
 
가까이 다가서서 여쭸더니 옮겼다고 한다. 본래는 그 집 앞 개울가에 있던 장승을 마을 입구 다리 옆으로 옮겼다고 한다.

오면서 못 봤다고 했다.

아마 버스 정류장에 가려서 놓쳤을 거라 한다.

버스 정류장 옆 화단 안에 있다고 친절하게 부언한다. 분명 눈을 부라리고 여기저기를 스캔하면서 왔는데, 놓치다니.
 

장승의 현주소

톱 손질하는 아저씨 말씀대로 다리 곁에 세 기의 장승이 서 있다. 가운데 장승은 크막한 코가 달린 것이 아무래도 최근작인 듯하고 양쪽 장승이 본래 모습일 것 같다는 짐작이 간다. 과연 가운데는 '귀촌귀농'인을 위한 장승이고, 왼편이 천하대장군이고 오른편이 지하여장군 장승이었다.

마을 입구로 옮긴 나무 장승들

친구는 부지런히 스마트폰 앵글을 들이댄다. 350킬로미터를 6시간에 걸쳐 달려온 참에 만난 장승이니 반갑기도 하겠다. 마을로 들어가면서 놓친 것은 오는 길에서는 버스정류장이 가리는 지점에 장승은 있었다. 우리는 삼현교 다리만 확인하고 뒤로 돌리는 고갯짓을 게을리했던 거다.

친구의 장승 촬영

친구는 최근 부쩍 전국 곳곳의 장승들을 찾는다. 물론 사진 자료가 부족한 장승들을. 대부분 답사를 다닌 곳이지만, 이번 홍천 삼현리와 화동리는 초행이었다.
 
원삼족두리로 멋을 낸 '지하여장군'의 쩍 벌린 입이 해학적인데 장인의 솜씨가 느껴진다. 구름이 두둥실 뜬 하늘을 배경으로 신부의 모습이 더욱 환하다. 환하게 웃는 신부 모습을 보니 고속도로에서 쌓인 피로가 싹 풀린다.

원삼족두리의 지하여장군

현대판 장승을 사이에 두고 사모관대로 치장한 '천하대장군'이 있다. 뭉툭한 코가 잘려 볼품이 깎였으나 위엄은 살아있다. 양코배기 '귀촌귀농대장군'에 결코 지지 않겠다는 오기가 보인다.

천하대장군과 귀촌귀농대장군

코를 덩그렇게 달아서 위세를 떨고 있는 신판 장승은 키마저 두 장승보다 크다. 요즘 우리 젊은이들 키처럼.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뤘으니 마을의 정기가 살아 있다.

코가 덩실한 귀촌귀농 장승

광주에서 우리를 안전하게 바래다준 기아의 '모닝'. 참으로 대단하다. 그 먼 길을 커다란 차량 사이를 이리저리 피하면서 350킬로미터를 왔다. 내려갈 때도 350킬로미터를 가야 할 처지의 친구 모닝! 나와 친구 체격이 비슷해서인지, 운전을 하면서 다른 조작이 하나도 필요 없다.

삼현리 표지석 앞의 답사 차량

솟대도 있다 들었지만,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솟대를 찾기 위한 친구는 오래된 전봇대를 솟대로 알고 다가가기까지 했다. 세상은 변해 오래된 솟대 버리는 것은 다반사가 된 세상이다.
 
삼현리를 나오면서 다시 한번 '천하대장군'을 마주했다. 원삼족두리 신부에 비해 못 생겼지만 신랑감으로는 부족함이 없다. 삼현리 주민들의 안녕과 번영을 빌면서 삼현리를 떠났다.

삼현리 천하대장군 장승

우리는 홍천의 또 하나의 보물을 찾아 화동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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