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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독서/교양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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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정철, 내 마음 베어내어 정철송강 정철(1536~1594)은 조선 중기 정계와 문학계에서 모두 중요 인물입니다. 정치를 떼어내고 문학만을 논한다면 따스함이 넘치는 정감 있는 인물입니다. 물론 '기리네' 하고 내세운 '님'이 '임금'이라 친다면 아부가 넘치지만, 말 그대로 사랑하는 '님'이라면 정이 철철 넘칩니다. 정철 시조, 내 마음 베어내어내 마음 베어내어 저 달을 만들어서 구만 리 먼 하늘에 반듯하게 걸어두고 고운 님 계신 곳에 비추어나 보리라사랑이 마음에 차고 차서 그 마음을 칼로 쑥 벤답니다. 그것으로 달을 만들어서 먼 하늘에 밝고 환한 달님을 만들어 마르고 닿도록 그리운 님을 비추고 노닐겠다는 얘기입니다. 하긴 낮엔 나타날 수 없으니 밤마다 등장할 수밖에 없네요. 정철은 낮보다 밤을 좋아한 것 같습니다. 하긴 그의 일생..
[시조] 조식, 두류산 양단수를 남명 조식남명 조식(1501~1572)은 퇴계 이황과 더불어 영남 성리학의 거두입니다. 이론을 강조한 퇴계학파에 비해 실천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훗날 남명학파 제자들이 의병으로 많이 활약한 것은 남명 조식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는 평생 벼슬을 멀리한 처사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정치는 송곳 같은 상소로 뭇 유생의 귀감이 됐습니다. 남명은 환갑 때 덕산의 사륜동에 산천재를 마련하고 강학에 힘씁니다. 덕산은 경남 산청 지리산 자락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지리산과 덕천강을 두고 읊은 시가 '두류산 양단수를'입니다. 시조의 '두류산'은 바로 산천재에서 바라본 '지리산'입니다. 조식 시조, 두류산 양단수를두류산 양단수를 말로만 듣다가 이제 보니 도화 뜬 맑은 물에 산그림자조차 잠겼어라 아희야 무릉이 어디메오..
[시조] 송순, 십년을 경영하여 송순15세기 조선시대 학자인 담양 출신 송순은 1519년 별시문과 을과에 급제하고 다양한 관직을 거쳤습니다. 중종의 시대에 김인후 등 많은 인사들이 그의 지도를 받았으며, 명종의 시대에는 '중종실록'과 '명종실록'의 찬수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사론을 편다는 죄목으로 한 때 귀양생활을 감수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에는 전주부윤, 나주목사 등을 거쳐 70세의 나이에 은퇴하였고, 이후에는 전라도 담양에서 독서와 시조를 지으며 인생을 보냈습니다. 저서로는 '면앙집'과 '기촌집'이 있습니다. 송순의 시조, 십년을 경영하여 십년을 꾸려내어 초려삼간 지어내니 나 한간 달 한간 청풍 한간 나눠드니 강산은 들올 곳 없어 둘러 두고 보리라십년 동안에 초가삼간을 마련했습니다. 삼간 중 하나는 내가, 하나는 밝은 달이, 마지막..
[시조] 황진이, 청산리 벽계수야 벽계수와 명월벽계수(碧溪水)는 풀어보면 푸른 계곡 물입니다. 명월(明月)은 밝은 달입니다. 리(裏)는 '속'이니 청산 속 흐르는 물과 밝은 달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셈이네요. 아니, 명월이 여유 없이 흘러가는 벽계수에게 옆구리를 찔러보는 셈이네요. '어이, 벽계수!' '그리 서두를 필요 있나? 청산을 이리 밝히고 있는 보름달이 있는데, 좀 쉬면서 놀다 가면 안 돼?' 벽계수는 말없이 흘러만 갑니다. 황진이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렵나니 명월이 산에 그득하니 쉬어간들 어떠리계곡물이 흘러 흘러가는 곳은 바다. 한 번 가면 돌아오지 못할 길을 왜 그리 서둘러 가는 게냐. 확실히 황진이는 건방기가 상당합니다. 나를 두고 네가 그리 쉽게 갈 수 있나 보자..
[시조] 황진이, 내 언제 무신하여 황진이 시조황진이! 이 여인이 오늘날 태어났다면! 하고 생각을 짚어본다. 재색을 갖췄다하니 춤과 인물은 최승희 정도는 될터이다. 시적 재능으로 볼작시면 소월 정도는 되지싶다. 밀당 수준으로 보면 김혜수 정도는 무난하지 싶다. 오늘 시조는 '밀당'의 주인공 황진이지 싶다. 살갑게 대하지 않아 님은 갔다. 시간이 흐르니 별 생각이 난다. 내가 그를 속이기라도 했단 말인가, 아니면 소식 한 번 전해주지 않는단 말인가? 그녀는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 소리마저 님 발걸음으로 느껴질 정도다. 시조, 내 언제 무신하여내 언제 무신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되 달 기운 삼경에도 님의 기척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파리에 어쩔바 모르겠네
[시조] 황진이, 청산은 내 뜻이오 황진이 시조, 청산은 내 뜻이오 청산은 내 뜻이오 녹수는 님의 마음 녹수는 흘러가도 청산은 변할쏜가 녹수도 청산을 못 잊어 울며 울며 가는구려청산과 녹수가 사랑을 하는구려. 사랑이 끝나고 녹수가 청산의 품을 벗어나네요 그려. 그럴 수밖에. 녹수는 한참도 머물 수 없고, 청산은 잠시도 움직일 수 없는 운명이니. 청산과 녹수의 사랑은 운명적으로 만나면서 헤어짐을 생각할 수밖에. 가는 녹수 마음도 많이 아프오. 그 소리가 계곡을 울리며 다음 길로 가는구려. 그게 운명이라오. 청산은 다른 녹수를 만나고, 녹수는 다른 님의 품을 돌 수밖에 없다오. 바다를 거쳐 다시 비가 도어 청산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마오. 녹수도 느긋하게 돌고 돌아오리다.
[시조] 황진이, 어뎌 내 일이여 황진이 시조, 어뎌 내 일이여 황진이 시에는 정이 덕지덕지 붙었다. 뻔히 그리워할 줄 알면서 잡지 않아 가버린 님. 그리워하며 자신을 탓한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가슴을 칠 일이다. 미치도록 좋아하는데 내색 않고 보낸 모질지 못한 마음. 그가 등 돌리고 가는 모습을 보고 '가지 마!'라고 소리치지 못하고 모퉁이 돌아가는 뒷모습만 봤던 내 못난 모습을 탓한다. 어뎌 내 일이여 그리울 줄 몰랐던가 있으라 하면 임이 구태어 갔겠냐만 보내고 그리는 마음 나도 몰라하노라 젊은 날 이런 기억 하나쯤은 있지 않나? 세월 지냐 그미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그리면서. 그러나 꿈은 꿈대로 가슴에 두는 것이 좋을 듯. 진이여! 그대도 이미 떠난 정인을 그리워하지 마오. 자기 탓도 하지 마오. 뭇사람들이 다 그리 산..
[시조] 황진이, 동짓달 기나긴 밤 황진이전하는 얘기는 이렇습니다. 짝사랑하던 이웃 총각이 상사병으로 죽습니다. 처녀 집을 지나던 상여가 천근만근 무게가 실려 움직이질 않습니다. 어여쁜 처녀는 자신의 옷으로 상여를 덮습니다. 그랬더니 움직입니다. 그 15세 처녀가 황진이입니다. 뛰어난 용모와 출중한 재능은 숨길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전하는 바로는 죽은 총각 때문에 기녀가 됐다는데 사실은 알 수 없습니다. 전해지는 시문으로 그녀의 인품과 시적 재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황진이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어내어 봄바람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님 오신 날 밤에 굽이굽이 펴리라 동짓달 기나긴 밤을 반 동강으로 싹둑 잘라서 보관합니다. 보관한 밤을 봄바람 이불로 쌓아서 녹입니다. 따스하게 온기 먹은 ..
[시조] 서경덕, 마음이 어리니 서경덕'송도 3절'이라 했던가요. 황진이가 흠모했던 인물 서경덕(1489~1546)은 독학으로 학문에 일가견을 이룹니다. 시서에 능한 기생 황진이와 서경덕에 얽힌 사연으로 '송도'라는 수식이 붙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박연폭포'가 포함되어 3절을 이루는 것은 괴이쩍습니다. 야호비령 산줄기의 성거산과 천마산 사이를 흐르면서 박연에 머물다 고모담이라는 폭호가 생긴 박연폭포는 절경으로 뽑힐 가치가 있네요. 한반도에서 폭포 3대 절경에 들 정도로 유명한 박연폭포는 두 위대한 역사적 인물과 함께 '송도 3절'이 됐습니다. 화담 서경덕 시조, 마음이 어리니마음이 어리니 하는 일이 다 어리석다 구름 낀 깊은 산중에 어찌 님이 올까만은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님인가 하노라 고결한 학자의 속내는 타고 있습니..
[시조] 매창, 이화우(梨花雨) 흣뿌릴 제 매창, 계랑 '매창'이라는 호를 가진 기생 '계랑'은 조선 선조 때 부안현 출신 여류시인입니다. 아버지는 부안 현리 이탕종입니다.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그녀는 유희경, 허균 같은 당대의 주요 문인들과 교류가 깊었습니다. 유희경의 시 중에는 매창에게 바친 시가 10여 편이 있고, 허균의 '성소부부고'에는 매창과 시를 주고받은 이야기가 전해져 있습니다. 매창의 시는 가늘고 약한 선으로 자신의 숙명을 그대로 읊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그녀의 뛰어난 시재를 엿볼 수 있습니다. 매창 시조, 이화우 흣뿌릴 제이화우 흣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님도 나를 생각하시는가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라가락 하노매라현대어 풀이배꽃이 비 오듯 우수수 흩날리는 봄날, 손잡고 울며 헤어진 그리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