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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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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오는 자전거길 마을과 우리 집 비단골 나주. 독특한 매력은 없으나 넉넉함이 있어 편한 나주. 새끼내 명품 자전거길을 지난다 비님이 오신다. 비를 피하러 들린 새끼내에 생긴 카페는 사람이 많았다. 카페에 들르면 유심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인테리어에 결제 시스템까지. 우리 집 여름이면 반기는 꽃, 은행나무 아래 배롱이 늘어졌다. 꽃 무게일까? 무더위일까? 체험관에 들렸다. 박 이사는 외근 중이다. 체험관 한켠에 세워진 배너에 풍물 돌리던 시절의 빛바랜 사진이 있다. 짐을 싸서 돌아가는 길, 정자에서 쉬는 길동형을 만났다. 형은 다른 일행은 보내고 오선생님과 함께였다. 두 분은 말년에 같은 학교에 계셨다. 오선생은 3년간 병중에 계셨던 사모님을 여의고 허전함을 토로하신다. 길동 형은 당신의 결혼 스토리를 꺼내신다. 4지..
나주 가는 길 비단골, 나주 나주가 羅州가 된 이유를 알 만하다. 직강공사로 멋이 없어진 지금도 이런데. 포크가 지나갔던 1884년은 그야말로 비단이 흐르는 길이었으리. 포크는 나주에서 남평으로 오르는 길에 아름다운 정원을 그렸다. 거대한 미국에 비하면 들과 산, 강이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모습이 조화를 이룬 정원으로 보였음직하다. 오늘. 이 길을 가면서 왜? 나주를 비단골이라 했는지를 알았다. 이제 보니 산도 비단산이다. 錦城山이 보이는 파사드에서 커피를 씹으며 음악을 듣는다. 옛날. 포크 일행의 나주길을 느끼며. 그래서 한 수 읊는다.
1913년 영산포 1913년 영산포 사진 향토 지리에 애정이 많은 김경수 박사가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사진은 정박 중인 배 한 척과 운항 중인 배가 담긴 영산강 흑백 사진이다. 변색이 심해 강물은 황톳빛이다. 물이 방방한 게 실제 강물도 비가 쏟아져 황톳물이지 싶다. 굽어지는 강둑과 멀리 보이는 개산(가야산)으로 봐서 영산포 등대 있는 곳에서 찍었지 싶다. 물론 1913년에는 등대는 없었다. 영산포 등대가 세워진 것은 1915년이니 이 사진이 등대 건립을 위한 조사 과정에서 촬영된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1960년대 영산강과 선창 내가 60년대 영산포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까지도 영산강에는 배가 많았다. 등대 주변에 줄줄이 정박 중인 배 모습은 여느 항구나 다름없었다. 영산포 다리가 시작되는 양변..
그날 2 그날 비가 오신다. 할머니는 늘 자연 현상을 말씀하실 때는 존칭을 썼다. 위의 경우도 '비님이 오신다.'고 하셨다. 비님이 오시니 1시 약속에 차질이 생길 것 같다. 만나기를 원해 문화전당 팽나무 아래로 약속을 잡았었다. 비님이 오시니, 나갈 수도 없고... '산수옥 모밀 이야기'에서 온모밀로 점심은 때우고 아래 카페에서 냉커피를 물었다. 자그자근 씹어 넘기는 커피. 그것도 커피를 즐기는 한 방법이다. 쌉사한 커피를 한 모금씩 즐기니 한 잔이면 두 시간은 버틴다. 그들이 왔다. 예의 얍삽한 노트북도 나왔다. 내가 전에 봤던 노트북은 아니란다. 화면이 13인치의 작은 노트북이다. 영상을 돌린다. 삶과 죽음, 창조주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나에게 와닿는 주제는 아니다. 요즘 같으면 자연이나 음악 등이였더라면..
소설가 오유권 추모 소설가 오유권 그의 삶은 성공적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그의 소설은 성공적이다. 위대한 현대소설가가 고향에서 외면받고 있다. 한수제 아래 나무 그늘에 숨은 문학비가 전부다. 그의 노봉산 꼭두말집 생가는 버려져 있고, 그가 근무했던 우체국 어디에도 소설가의 흔적은 없다. 우체국 옆 시립도서관에도 소설가를 기억할 공간은 없다. 그의 소설 '이역의 산장'을 원작으로 만든 1993년 영화 '만무방'은 1994년 제32회 대종상 6개 부문을 석권했건만, 소설가의 공헌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소설가 고향에서조차 그의 기억들이 지워지는데 말해 무엇하리. 소설가 오유권이 학벌이 좋았고 제자들이 많았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초졸이 전부였고 독학으로 문학 공부를 했다. 그에게 소설은 인생의 전부..
드디어 그날이다 그날 그날이다. 그와 약속한 날이. 나는 그 연락에 응했고 준비를 한다. 그동안 아꼈던 수박도 먹었다. 그리고 감자도 삶았다. 자꾸 먹는 것들만 생각나지? 영상을 보다 모아든 것도 쭈욱 살폈다. 돌아보니 남은 건 후회였다. 후회 또 후회 후회가 많은 삶 후회를 빼면 1년. 결국 인생에서 남는 건 1년이란 얘기. 같지 않은 얘기지만 뇌리에 감도는 후회 하나를 떨칠 수 없다. 후회 중에 뻐 아프게 남는 후회. 왜? 그 사람을 그렇게 보냈을까? 나는 그해 5월, 그 사람을 보낸다. 아니, 내가 돌아섰다. 자신의 뒷모습을 보이기 싫다면서 나 먼저 가라고 했다. 처음 만난 건, 오락실에서다. 당시 오락실 게임이라야 '벽돌깨기'가 전부. 나름 달인 경지에 이른 나만큼이나 벽돌을 깨는 솜씨가 좋은 커다란 항아리 상자..
전일245 시민갤러리 대관 사용료 전일245 시민갤러리 대관 전일245에는 오월 기념 공간이 있고 사무 공간도 있습니다. 또한 갤러리와 회의실도 있습니다. 3층 시민갤러리와 4층의 중, 소회의실이 그것입니다. 8층과 9층은 다목적강당도 있습니다. 사용에 관한 문의는 시청 대관 안내 및 신청은 광주광역시 홈페이지에서 진행됩니다. 대관시설 전일빌딩245 www.gwangju.go.kr 대관 절차 및 규정 신청서 다운로드 대관 신청서 및 전일빌딩245 문화해설 신청은 다음 사이트에서 진행합니다. 신청서 다운로드 신청서 다운로드 전일빌딩245 www.gwangju.go.kr
5.18민중항쟁 사적지 지도 만들기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5.18민중항쟁 사적지 5.18민중항쟁 사적지는 아래와 같이 32곳이 지정되어 있다. 사적 번호는 29번까지이나 5.18민주광장 주변 사적지가 5-1부터 5-4까지 있기 때문에 전체 지정된 사적지는 32곳이다. 민중항쟁 사적지 목록 사적 1호: 전남대학교 정문 사적 2호: 광주역 광장 사적 3호: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옛터 사적 4호: 금남로 사적 5-1호: 구 전남도청 사적 5-2호: 5.18 민주광장 사적 5-3호: 상무관 사적 5-4호: 광주 YMCA 사적 6호: 광주 YMCA 옛터 사적 7호: 광주 MBC 옛터 사적 8호: 녹두서점 옛터 사적 9호: 전남대학교 병원 사적 10호: 광주기독병원 사적 11호: 구 광주적십자병원 사적 12호: 조선대학교 사적 13호: 배고픈 다리 일대 사적 14호: 주남..
모조 미륵사지석탑의 해체 미륵사지 석탑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석탑이자 규모가 가장 큰 석탑, 미륵사지석탑. 양식상 목탑에서 석탑으로 이행되는 과정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국보 제11호다. 이 석탑은 백제 석탑의 시원 형식으로 불리며, 여러 면에서 석탑 전체의 출발로 여겨지는 9층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탑 모형이 이번 광주에서 석탄일 기념 조형물로 아시아문화전당 518광장에 조성됐었다. 조형물은 불기 2566년 석가탄신일을 맞아 관등회를 가지면서 세워졌다. 이런 조형물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궁금하면서 당시 8층 금남245에서 사진을 찍은 게 있다. 거대 조형물이 518광장에 설치되길래 처음에는 뭔가? 궁금했다. 그제 석가탄신일이 지난 오늘 10일 아침에 그것을 해체하고 있다. 설치할 때도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이 든..
어린어버이날 2022년 어린어버이날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듵는다. 우수가 배인 서정적 현의 울림으로 시작된 음악이 피가 끓는 듯이 바빠지면서 심장까지 쫄깃해진다. 연주자는 한수진이다. 그녀는 얼굴만큼이나 마음도 고운 바이올리니스트이다. 가녀린 몸에서 어떻게 저런 박력까지 나올까 싶다. 각설하고, 어제 하루를 돌아보자. 연락이 왔었다. 금요일 저녁 시간이 어떠냐고? 당연 가능타했다. 본래는 데이터 과학 스터디가 있는 날이다. 단톡방에 'No'라고 날리고 즐거운 가족모임을 그렸다. 노대동 어디에 숯불갈비집이란다. 오후 5시면 저녁으로는 빠른 시간인데... 하면서 갔다. 7시에 예약된 방이라서 그 시간 전에 끝내려고 빨리 잡았단다. 손주도 왔다. 중2인데 내 키를 훌쩍 넘어섰다. 저번에만 해도 비슷하다 싶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