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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인생/여행

[답사] 홍천 화동리 장승과 솟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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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동리에서

삼현리 경험이 먹혔다. 쉽게 포기하지 말자는. 마을 입구의 '장승공원'이라는 팻말이 우리가 찾는 장승 컨셉과 맞지 않았다. 늘 느끼는 일이지만 '돈 들여 망치는 일'이라는 판단이 앞섰다.

수변공원 팻말

나중에 확인됐는데, '돈 들여 망친 수준'은 아니었다. 때깔을 너무 바꿔 진짜와 가짜 구분을 어렵게 했다.

뒤로 밀려난 진짜(?)

정선생은 코를 킁킁거렸다. 예의 냄새 찾는 모드로 변한 것이다. 도로를 따라 속도를 늦춰 진행했다. 군부대와 맞닥뜨릴 때까지. 강원도 답게 동네 막바지 모퉁이에는 군부대가 있었다.

주민과의 대화

이곳도 역시 주민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경로당에도 사람이 없다. 허탈해하는 친구를 차에 두고 주변을 싸댔다. 마침 외출 갔다 돌아오는 부인을 만났다. 대뜸 물었다. '본래 장승은 어디?'냐고. 부인은 갸웃하더니, 물어보겠다고 들어갔다. 이어 나이가 우리 또래의 남성이 나왔다.

조성된 공원에 있는 장승이 '천하대장군'이 맞다고. 그리고 산자락 쪽으로 올라가면 변압기가 있고 거기서 10미터 후방에 '청제', 반대편 냇가에는 '백제' 장군이 있다고.

반가웠다. 정선생은 돌아가면 기록에서 삭제해야겠다는 다짐까지 하던 터다. '현지답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던 터라 반가움은 더욱 컸다.

화동리 장승의 구성

이곳은 역할이 나뉘어 있었다. 마을을 들어오는 길에는 '천하대장군'이 지키고. 동편 산자락은 '청제(靑帝)' 장군, 서편 냇가는  '백제(白帝)'  장군이 담당하는 것으로. 그러니까 남쪽 들입은 천하대장군이 본군으로 사수하고, 동서 양 날개는 청백 두 장군이 각각 담당하는 물샐틈 없는 진용을 갖춘 것이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장승과 솟대 일체형이다. 세 곳 모두 일체형 장승을 세웠다. 이리 표현해도 될지 모르겠다만 '장솟' 형태다. '천하대장군' 두상에 솟대를 올렸다. 요즘 마트에서 유행하는 '원 프러스 원' 형국이다.

마을 입구를 지키는 천하대장군

화동리 솟대제

매년 정월 초나흗날이면 집집마다 쌀 한 되씩을 추렴하여 제물을 준비해서 성황당에 제를 올리고 '솟대제'가 시작됐다고 한다. 이어서 남쪽을 담당하는 천하대장군에게 '거리제'를 올린 후에 '동방청제장군'과 '서방백제장군'을 세웠다고 한다. 우리의 전통적 우주관에  청색은 동쪽을 상징하고 수호 동물은 '용'이다. '청용'이 여기서 유래된 말이다. 백색은 서쪽을 상징하고 수호 동물은 '호랑이'다. '백호'는 여기서 유래됐다고.

정선생이 설명한다.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에서 청군, 백군으로 나눠 경쟁하는 것도 이런 유래와 관련 있지 싶다.

동방청제장군을 촬영하는 정선생

동방청제장군은 산 허리 쪽으로 올라 붙었다. 마찬가지로 청제장군 옆에 솟대를 세웠다. 솟대에 올라간 새는 기러기란다.

동방청제장군과 솟대

남방을 담당하는 천하대장군이 있는 곳에서 서쪽으로 난 범골교 옆에 서방백제장군이 있다. 동방청제장군과 같은 모양새를 취한 장승과 솟대가 있다. 윗녘이라 모내기가 빨라 벼가 제법 자랐다.

서방백제장군과 솟대

오후 세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홍천 올 때 소요 시간이 여섯 시간이었다. 지금 출발해도 밤 9시다. 장승공원에 세워진 잘 깎인 신장승과 투박하지만 정감 있는 구장승에게 고별인사를 남기고 출발했다.

장승공원의 잘 생긴 두 장승

올 때 경험상, 영동고속도로는 정체가 뻔했다. 머리를 굴려 국도로 접었다. 물론 고속국도의 삭막함을 벗고 싶기도 했다. 두 시간을 달려 강원도를 벗어나고 경기도 여주까지 갔다. 일반도로는 속도 제한이 너무 많았다. 우리 계산은 영리한 것이 못됐다. 여주에서 '일반도로 우선'에서 '고속도로 우선' 모드로 변경했다. 그때부터는 말이 필요 없다. 전방을 주시하고 운전대만 붙잡고 고고씽씽이다.

친구의 '모닝'은 거침없이 달렸다. 정선생 집에 도착한 것이 9시 10분. 우리 집에 도착한 것은 9시 55분이었다.

홍천 2시간을 위해 길에서 13시간을 보낸 것이다. 다행히 의도한 성과를 거뒀고, 게다가 날이 좋아 즐거운 답사가 됐다.

후기

다음날인가?

전화가 왔다.

'형님! 삼현리 가운데 장승에 쓰인 게 뭐였죠?'

'귀촌귀농...'

다시 봤다. 자료로 쓸려고 글씨만 촬영한 사진을. '귀농귀촌'이었다.

삼현리 '귀농귀촌장승' 명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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